자동차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는 가운데, 현대차(005380)그룹의 통합형 독자 운영체제(OS)가 곧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통합형 OS는 기존 오디오·비디오·내비게이션(AVN) 등 인포테인먼트 중심이 아닌 동력계, 전자장비(전장), 자율주행 시스템 등을 모두 관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자동차는 스마트폰처럼 진화하고 있다. 스마트폰은 기계 자체의 성능도 중요하지만, 성능을 100% 끌어내기 위해선 OS가 더 중요하다. 스마트폰 OS는 각각의 기능이나 애플리케이션(앱), 카메라·프로세서 등 기계부품을 제어하고 관리하면서 스마트폰의 성능을 최적화한다. 애플 iOS나 구글 안드로이드가 대표적이다. 이들 OS는 단순히 앱만 활성화하는 게 아니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나 배터리 성능, 저장 장치 등 기계적인 부분까지도 관장한다.
소프트웨어인 OS 기술력이 높으면 하드웨어로 영역을 쉽게 확장할 수 있다. 구글 스마트폰 OS인 안드로이드는 삼성전자(005930) 갤럭시, 소니 엑스페리아 등 여러 기기에 장착되면서 하드웨어 성능을 높인다.
현대차그룹은 향후 자동차 OS가 미래차 경쟁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본다. 이에 통합형 OS를 개발해 자동차 기능과 영역을 확대하려고 한다. 정의선 현대차그룹이 강조하는 소프트웨어 중심 차(SDV·Software-Defined Vehicle)의 핵심이 바로 OS인 셈이다.
현대차그룹은 자동차 개발을 자동차 그 자체인 ‘하드웨어’와 OS가 중심이 되는 ‘소프트웨어’, 소프트웨어 제어에 의해 하드웨어를 움직이는 ‘애플리케이션’ 등 세 갈래로 나눴다.
자동차 통합형 OS에 가장 앞선 회사는 테슬라다. 테슬라는 수년 전부터 동력계, 자율주행 시스템 등 자동차 각 기능을 테슬라 소프트웨어라는 통합형 OS로 통제하고 있다. 테슬라 차에서 발견되는 결함 대부분을 무선업데이트(OTA)로 해결할 수 있는 이유도 테슬라가 통합형 OS를 사용하고 있어서다.
도요타나 폭스바겐그룹 역시 통합형 OS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도요타 OS에는 아린(Arene), 폭스바겐 OS에는 vw.OS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도요타와 폭스바겐은 2025년 모든 신차에 OS를 집어넣는다는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인포테인먼트용 OS인 ccOS(Connected Car Operation System)를 개발해 지난해 말부터 출시하는 차에 적용하고 있다. 현대차 그랜저, 코나, 기아(000270) EV9 등에 ccOS가 들어간다. 올해 출시 예정인 현대차 싼타페, 기아 쏘렌토, 제네시스 GV80에도 장착된다.
현대차그룹 OS 전략의 첨병에는 글로벌소프트웨어센터인 포티투닷이 있다. 네이버 최고기술책임자(CTO)였던 송창현 대표가 이끄는 포티투닷은 지난해 8월 현대차그룹에 인수됐고, 이어 지난 4일 현대차와 기아로부터 총 1조원의 투자(현대차 6223억4600만원, 기아 4215억6400만원)를 받았다. 현대차그룹은 2025년 전 차종을 SDV로 전환하고, 자동차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데 총 18조원을 쓸 예정이다. 송 대표는 현대차 글로벌소프트센터장을 겸한다.
그룹 내 연구개발(R&D) 조직도 재편했다. 특히 최고기술책임자(CTO) 산하의 차량SW(소프트웨어)담당 조직을 신설하고, 자율주행사업부, 차량제어개발센터, 디지털엔지니어링센터 등을 추가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차량SW담당은 현대차, 기아에 적용될 전자아키텍처, 통합제어전략 등을 연구하고 실행할 예정으로, 본사 SDV본부와 포티투닷과의 협조로 그룹 SDV 전략을 완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OS 등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인재 채용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현재 세자릿수 이상의 정보통신기술(ICT) 개발 경력직을 상시 채용하고 있다. 포티투닷 역시 별도로 개발자를 수시로 채용 중이다.
업계는 현대차그룹이 조만간 통합형 OS의 이름과 기술 개요를 확정할 것으로 본다. 이르면 내년 초 미국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전자·ICT 전시회 CES 2024가 데뷔 무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현대차·기아가 올해 9월 독일 뮌헨 IAA(국제자동차전시회·Internationale Automobil-Ausstellung)에 참가하지 않고, 내년 CES에 참가하는 건 이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장대석 한국자동차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완성차 업체들은 스마트폰 전환기에 IT 기업의 OS 전략과 결과를 학습해 통합형 OS 개발을 통한 소프트웨어 생태계 확보가 중요하다는 걸 인식하고 있다”며 “2024년이 미래차 OS 경쟁을 위한 골든타임으로, 완성이 늦어지거나 결과물이 좋지 않은 회사는 타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