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가 중국산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에 대해 구매 보조금을 차등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국내 배터리 산업을 보호하고 중국산 배터리가 국내 보조금을 쓸어간다는 비판을 불식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19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환경부는 내년 전기차 보조금 산정 방식을 논의하면서 배터리 관련한 보조금 조건을 까다롭게 둘 예정이다. 현재는 배터리 관련해 전기 승합차(버스) 정도만 에너지 밀도 등을 따지는데, 앞으로는 전기 승용차나 전기 화물차(트럭)에서도 이런 조건들을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내년 보조금 산정에 대한 논의가 곧 시작되는데, 배터리 보조금 차등 문제도 검토하려고 한다”며 “다만 아직 확정된 것은 없고, 여러 가능성을 따져볼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부의 이런 방침은 중국산 배터리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배터리 제조국에 관계없이 일정 조건을 만족하면 보조금을 지급한다. 그러나 최근 중국산 배터리 장착 전기차나 중국 생산 전기차가 속속 국내 시장에 진출하면서 세금으로 중국 자동차 산업을 지원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업계는 미국의 인플레이션법(IRA)처럼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중국산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무역갈등이 생길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또 국내로 들어오는 중국산 배터리 중 일부는 국내 기업이 중국에서 생산하고, 국산 전기차 중 일부도 중국산 배터리를 사용한다. 현대차(005380) 코나 일렉트릭과 기아(000270) 니로EV 등에는 중국 CATL의 배터리가 들어간다. 현대차·기아는 내년부터 포터 일렉트릭과 봉고EV에도 중국산 배터리를 장착할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에너지 밀도’에 따른 보조금 차등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이 방식은 현재 전기 버스에 적용 중이다. 올해 기준 전기 버스의 국고보조금은 6700만원인데, 장착된 배터리의 에너지밀도가 1L(1㎏)당 500Wh 이상이면 100%, 450Wh 이상~500Wh 미만은 90%를 준다. 400Wh 이상~450Wh 미만은 80%, 400Wh 미만은 70%를 지급한다.
이는 국내에 유통 중인 중국산 전기버스 대부분이 에너지밀도가 1L당 400Wh 미만인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장착한 데 따른 것이다. 국산 전기 버스는 에너지밀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삼원계(니켈·코발트·망간) 리튬이온 배터리를 사용한다. LFP 배터리는 일반적으로 삼원계 배터리보다 가격이 30% 이상 저렴해 가격 경쟁력을 노린 중국 회사들이 주로 장착한다.
전기 승용차도 삼원계 배터리가 주력이다. 에너지밀도는 평균적으로 1L당 250Wh 수준이다. LFP 배터리는 이보다 낮은 125~130Wh 수준이다. 최근 국내 출시가 예고된 테슬라 모델Y 뒷바퀴 굴림(RWD) 제품은 CATL LFP 배터리를 장착하고 있다.
전기 트럭 역시 중국산 배터리에 지급되는 보조금이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 역시 에너지밀도를 고려해 차등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GS글로벌이 수입하는 비야디(BYD)의 1t 전기트럭 T4K는 82.02㎾h 용량의 LFP 배터리를 장착한다. 이 차는 1t 전기트럭이 받을 수 있는 최대 보조금인 1200만원을 받는다. 한국지엠(GM) 군산 공장을 인수한 부품사 명신의 자동차 판매 자회사 모빌리티네트웍스는 지리자동차가 제조한 1t 전기 화물차 쎄아2밴을 수입·판매하는데, 역시 보조금 1200만원을 받는다. 쎄아2밴은 41.86㎾h급 LFP 배터리를 탑재한다.
제이스모빌리티가 수입하는 이티밴이라는 전기 화물차도 보조금 1200만원을 받는다. 이 차는 중국 브릴리언스 샤인레이가 생산하고 41.9㎾h급 LFP 배터리를 채용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중국 전기차나 전기 화물차가 국내 보조금을 노리고 활발히 진출하는데, 국내 전기차 및 배터리 산업을 지키기 위해 보조금을 차등 적용할 필요가 있다”며 “에너지 밀도 등을 고려해 보조금을 주면 저가의 인산철 배터리를 쓰는 중국산 제품들의 경쟁력이 희석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