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분기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이 늘어난 가운데, 판매 상위 10개 회사 중 현대차(005380)·기아(000270)만 판매량이 감소했다. 미국 인플레이션법(IRA)에 따라 전기차 보조금을 받지 못한 여파가 본격화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9일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된 전기차는 270만2000대로 집계됐다. 중국 비야디(BYD)가 전년 동기 대비 97.0% 증가한 56만6000대를 판매해 업계 1위를 차지했다. 미국 테슬라는 전년 대비 36.4% 늘어난 42만3000대로 2위에 올랐다. 3위는 중국 상하이자동차(전년 대비 13.1% 증가), 4위는 독일 폭스바겐그룹(전년 대비 17.4% 증가), 5위는 지리자동차(전년 대비 40.6% 증가)가 각각 차지했다.

아이오닉 5가 만들어지는 현대차 울산공장. /현대차 제공

현대차그룹은 1분기에 11만9000대를 팔아 7위에 머물렀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1분기에 12만2000대를 전 세계 시장에 내보냈는데, 판매량이 2.2% 줄어든 것이다. 글로벌 전기차 판매 상위 10개사 중 판매가 줄어든 회사는 현대차그룹이 유일했다. 나머지는 모두 두 자릿수 이상의 성장률을 보였다.

업계는 현대차·기아의 전기차 판매 부진의 배경으로 미국 IRA 보조금 탈락을 꼽고 있다. 미국은 현대차·기아 전기차 판매의 최우선 시장으로, IRA 발효 전 현대차그룹은 미국에서 테슬라에 이은 시장 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IRA 보조금 탈락이 최종 확정된 지난달 현대차 아이오닉5의 미국 판매량은 전년 대비 13% 감소한 2323대에 그쳤고, 기아 EV6는 전년 대비 52.8% 위축된 1241대를 판매했다. 1분기로 범위를 넓히면 두 회사의 미국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대비 6.5% 줄어든 1만4703대로 집계됐다.

기아 화성공장 EV6 생산라인. /기아 제공

올해 1분기 미국에서 역대 분기 최다 판매량을 달성한 현대차·기아로서는 전기차 부진이 뼈아픈 상황이다. 두 회사의 1분기 합산 판매량은 전년 대비 18.5% 증가한 38만2354대로, 제너럴모터스(GM), 도요타, 포드에 이어 시장 4위다. 스포츠유틸리티차(SUV)와 제네시스의 판매량이 실적을 견인한 것으로 보인다.

IRA 보조금뿐 아니라, 최근 미국에서 펼쳐지고 있는 전기차 가격 인하 경쟁도 현대차·기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테슬라가 전기차 가격인하를 주도하는 가운데, 포드와 루시드 등이 이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테슬라는 이런 가격인하 효과에 힘입어 지난 1~2월 전기차 판매량이 55% 증가했다.

현대차그룹은 모든 전기차가 미국 IRA 보조금을 받는 시점을 2025년 하반기~2026년 상반기로 잡고 있다. 미국 조지아에 건설 중인 연산 30만대 규모의 전기차 전용 공장 현대차그룹 메가플랜트 아메리카(HMGMA)의 가동 시점이 그때쯤이기 때문이다. 또 SK온과의 배터리셀 합작공장도 2025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조만간 LG에너지솔루션(373220)과의 합작 공장 설립도 발표할 예정이다.

다만 이 시점 이전까지는 전기차 판매를 늘릴 만한 대책이 없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은 IRA 보조금을 100% 받을 수 있는 리스와 렌탈 등 상업용(플릿) 전기차 비중을 높인다고 하지만, 얼마나 효과를 볼지는 미지수”라며 “전기차 시장 경쟁의 중심이 ‘가격’으로 옮겨지고 있는 만큼 현대차그룹의 판매 전략을 다시 살펴볼 시기가 온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