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밝혀온 유럽연합(EU)이 독일의 강력한 반대를 받아들여 e퓨얼(e-fuel·합성연료) 차량에 예외를 두기로 했다. 이에 따라 e퓨얼을 사용하는 내연기관차는 미래에도 전기차와 공존하게 됐다. 다만 e퓨얼은 가솔린보다 훨씬 비싸, 2035년 이후 내연기관차는 부유층의 전유물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포르셰, 람보르기니, 페라리와 같은 스포츠카 브랜드들은 e퓨얼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20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유럽연합은 독일의 요구를 받아들여 e퓨얼을 쓰는 신차를 2035년 이후에도 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유럽연합은 당초 2035년에 내연기관차를 완전히 퇴출하려 했는데, 자동차 산업을 보호하려는 독일·이탈리아·폴란드 등의 반대로 e퓨얼을 예외로 인정했다. EU 집행위원회는 e퓨얼 자동차에 대한 세부 법적 범주를 마련할 방침이다.

칠레에 위치한 이퓨얼 생산 공장. /포르쉐AG 제공

e퓨얼은 전기 기반 연료(Electricity-based fuel)의 약자다. 공기 중에서 포집한 이산화탄소와 물을 전기 분해해 얻은 수소를 합성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연료다. 풍력이나 태양광과 같은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그린수소를 쓴다. 제조 공정과 반응 조건에 따라 e-가솔린, e-메탄올, e-디젤, e-항공유 등이 생산된다. 연소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데, 연료를 생산할 때 제조 과정에서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포집한다는 점에서 친환경성을 인정받았다.

e-가솔린이나 e-디젤은 주유소에서 자동차에 주입하는 방식으로 간단하게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기존 내연기관차 플랫폼과 주유소 등 인프라를 그대로 쓰기 때문에 전기차로 전환했을 때보다 인프라 투자비가 적게 든다. 삼성증권(016360)이 최근 발간한 ‘e퓨얼, 전기차 중장기 수요에 위협 요인’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가 전기차로 100% 전환했을 때 드는 인프라 투자비는 약 6조달러인데, e퓨얼로 100% 전환하면 필요 비용이 3000억~4000억달러에 불과하다. 전기차 전환비용 대비 5%에 불과한 금액이다.

e퓨얼의 최대 단점은 가격이다. 생산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국제청정교통위원회(ICCT) 연구에 따르면, 2030년 e퓨얼의 가격은 리터(ℓ)당 3~4유로로 휘발유 가격의 3~4배로 예상된다. 2050년쯤에야 규모의 경제로 0.8~1.9유로로 가격이 낮아질 전망이다. 앞으로 수십년은 고급유보다 비싼 연료로 유통되는 셈이다. 이 때문에 e퓨얼은 전기차를 완전히 대체하기보다 일부 고가 스포츠카에만 쓰일 것이란 예상이 우세하다.

대표적인 스포츠카 브랜드인 포르셰·람보르기니·페라리는 e퓨얼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독일 폭스바겐그룹의 포르셰는 작년 4월 칠레의 e퓨얼 생산설비 개발 기업 HIF에 7500만달러 규모의 지분(12.5%) 투자를 진행했다. e퓨얼을 직접 생산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올리버 블루메 포르셰 CEO(최고경영자)는 e퓨얼과 전동화가 공존해야 한다며 “911은 가능한 한 엔진을 장착해 생산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탈리아 스포츠카 브랜드 페라리도 이번 결정을 반겼다. 베네데토 비냐 페리라 CEO는 유럽연합이 e퓨얼을 예외로 인정한 직후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2036년 이후에도 (유럽연합 내) 내연기관차 판매가 허용된다는 점에서 이번 결정은 희소식”이라며 “모든 신기술이 그렇듯, e퓨얼도 신기술인 만큼 가격이 저렴해지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스테판 윙켈만 오토모빌리 람보르기니 CEO는 e퓨얼이 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고 지지해 왔다. 폭스바겐그룹의 아우디는 이보다 앞선 2017년에 e퓨얼 연구 시설을 설립했다.

주력 사업은 아니지만 현대차(005380)도 e퓨얼과 관련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현대차는 2019년 기초선행연구소(IFAT)를 설립한 뒤 e퓨얼 제조 기술 개발 계획을 발표했고, 작년엔 아람코, 사우디아라비아 킹 압둘라 과학기술 대학(KAUST)과 e퓨얼 공동연구 협약식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