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엠과 르노코리아가 처참한 내수 성적표를 받았다. 국내 생산 시설을 보유한 회사임에도 내수 시장에서 팔리는 차가 그만큼 없다는 것이다. 단순 수출기지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지속적인 수출 물량 수주가 없으면 공장의 존폐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3일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르노코리아차의 1월 신차등록대수는 2642대, 한국지엠은 1021대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BMW와 메르세데스-벤츠는 각각 6090대, 2900대를 팔았다. 국내 완성차 회사가 수입차 회사에 한 달 판매량이 밀리는 건 이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생산 이점을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2023년형 QM6. /르노코리아 제공

르노코리아는 향후 신차 계획이 전혀 없는 상태다. 기존 제품을 여러 방식으로 응용해 만든 가지치기 모델만 나오고 있다. 2016년에 출시된 중형 세단 SM6,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QM6는 출시된지 7년여가 지났는데도 완전변경 소식이 없다. 현재 수익성이 낮은 소형 SUV XM3에 내수 판매를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수출 비중은 71.8%로, 지난해 16만3090대를 생산해 11만7020대를 수출했다.

르노 본사도 르노코리아를 내수 판매보다는 수출 거점으로 여긴다. 시장이 작기도 하지만, 현대차(005380)·기아(000270) 등과 경쟁하기가 버겁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루카 데 메오 르노그룹 회장은 지난해 10월 방한해 "(르노코리아를) 중대형 자동차의 수출 허브로 삼으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르노는 중국 지리차와 함께 하이브리드 신차를 개발해 2024년 한국에 선보이겠다는 계획을 밝혔는데, 이에 대해 르노코리아는 명확한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한국지엠도 국내에 생산 공장을 갖추고 있음에도 내수에선 수입 차종 판매를 늘리고 있다. 현재 판매 제품 가운데 국내 생산은 트레일 블레이저 1종 뿐이다. 창원 공장에서 곧 트랙스가 생산돼 판매될 예정이나, 수출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한국지엠은 지난해 25만8260대를 만들어 22만7637대를 해외로 내보냈다. 수출 비중은 88.1%다.

내수 시장 판매를 위해 한국지엠이 수입해 오는 차들은 대부분 인기가 떨어진다. 픽업 트럭 등 틈새시장(니치마켓)을 주로 공략하는 탓이다. 차종당 한 달 판매량이 1000대도 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한국지엠 국내 대리점들은 "팔릴만한 차를 들여오라"며 반발하고 있다. 한국지엠은 대리점과의 대화를 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곧 출시하는 GMC 시에라를 온라인으로만 판매할 방침이다.

쉐보레 트레일블레이저. /한국지엠 제공

내수 축소·수출 집중 전략은 국내 사업장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는 게 업계 지적이다. 수출 물량은 얼마든지 변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과거 르노코리아가 북미 수출용 닛산 로그를 만들다 물량을 빼앗겨 회사가 휘청인 일이 있다. 한국지엠이 유치한 9000억원의 투자금은 현재 생산하는 차종에 대한 것으로, 이후 계획은 없는 상태다. 수년 뒤 생산 차가 없어 공장 문이 닫힐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전기차로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현재에는 이런 위험성은 더욱 커진다. 공장을 만들고 옮기는 일이 더 쉬워지기 때문이다. 공격적인 전기차 전략을 발표한 제너럴모터스(GM)는 한국지엠에 관련 투자가 없을 것으로 단언하고 있다.

업계는 내수 판매가 공장을 유지하는 하나의 안전장치로 작용한다고 말한다. 수출 물량은 본사 전략에 따라 생산지를 바꿀 수 있지만, 국내 판매가 담보돼 있는 공장은 함부로 없애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수출 전략도 좋지만, 내수 판매에 더 신경써야 하는 이유는 공장의 미래를 보장하기 때문"이라며 "노동집약적인 자동차 산업 특성상 공장의 유지는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