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자동차 기업 르노와 일본 자동차 기업 닛산의 동맹관계가 20년 만의 대변혁을 맞이한다. 르노가 보유한 닛산 지분이 기존 43%에서 15%로 낮아지며, 닛산은 불평등한 자본 관계를 해소하고 독립성을 얻는다. 르노는 5조원대 실탄을 확보해 전기차에 투자한다.

31일 르노와 닛산의 발표에 따르면, 양사는 동맹관계를 대대적으로 개편하기로 합의했다. 작년부터 이어온 치열한 협상을 마침내 끝냈다.

/로이터뉴스1

르노는 닛산의 지분을 43%에서 15%로 줄이며 닛산에 대한 지배권을 포기하기로 했다. 닛산 지분 28%를 프랑스 신탁사에 일단 넘기고, 향후 절차에 따라 지분을 매각하는 방식이다. 지분 매각 완료 전까지 르노는 닛산 지분 28%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지만, 배당은 받는다. 닛산은 르노가 분할하는 전기차 전문 자회사 암페어에 최대 15%를 출자하기로 했다.

닛산은 이번 동맹관계 재편으로 자본 불평등 구조를 깼다. 1999년 르노는 경영난에 빠진 닛산 지분을 사들이며 최대주주로 올랐고, 닛산도 르노 지분 15%를 인수하며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동맹)를 구축했다. 동맹을 표방하지만 닛산이 보유한 르노 지분은 의결권이 없어 사실상 르노가 닛산을 지배했다. "독자 경영이 낫다"며 르노는 닛산을 오랜 기간 완전자회사로 합병하지 않았는데, 2019년엔 노선을 바꿔 합병하려다 일본의 반대로 무산된 적이 있다.

닛산은 르노보다 글로벌 판매량이 많고, 특허 기술 보유량에서도 우위라 르노에 착취당하고 있다는 피해의식이 컸다. 2021년 기준 르노의 글로벌 판매량은 269만대, 닛산의 글로벌 판매량은 406만대로 닛산이 더 많다. 일본 특허 분석 회사 페이턴트 리절트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전기차 특허 출원이 르노는 327건, 닛산은 2070건으로 기술에서도 닛산이 앞선다. 특히 카를로스 곤 전 르노·닛산 회장이 배임 등 혐의로 일본에서 체포됐다가 풀려난 뒤 가택연금 상태에서 레바논으로 도피한 2019년 이후에 일본의 불만이 확 커졌다. 내부에선 "(곤 회장 사건 이후) 르노·닛산 사이에 불신만 있고 협력은 없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번 동맹관계 재편 이후 일본 매체들은 "닛산이 거액의 보상을 지급하며 '르노 고충'을 해결했다(재팬타임즈)", "닛산은 불평등한 관계 탓에 오랫동안 좌절해 왔다(닛케이아시아)"는 등 대체로 환영하는 기사를 냈다. 르노와 닛산은 상호 동등한 15%의 지분을 보유하면서 의결권도 서로 가지게 됐다.

르노는 닛산 지배권을 잃지만, 전기차 변혁기에 투자금을 대거 확보하게 됐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르노가 매각할 닛산 지분 28%의 가치는 약 40억유로(5조3000억원)에 달한다. 르노그룹의 2021년 연간 영업이익 16억6300만유로의 두 배가 넘는다. 아울러 르노는 전기차 전문 자회사 암페어를 분사할 예정인데, 닛산의 암페어 출자도 확보했다.

프랑스 매체 르몽드는 "이번 합의 발표는 닛산이 지속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기에 나온 것"이라면서 "닛산의 작년 매출은 전년 대비 22.2%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증가했지만 이는 엔화 가치 하락 영향"이라고 보도했다. 익절(益絶‧이익을 보고 지분을 정리하는 것) 기회라는 의미를 담았다. 그러면서 "일본 언론은 닛산이 1999년 르노그룹에 의해 구해졌다는 사실을 잊는 것 같다"고 불편한 기색을 보이기도 했다.

르노와 닛산은 지분 관계 개편을 발표하며, 인도와 중남미, 유럽에서 프로젝트를 함께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구체적인 사업 계획을 발표하진 않았는데, 동맹관계를 완전히 깨지 않고 이어 나간다는 점을 덧붙인 셈이다. 르노와 닛산은 20년 넘게 내연기관차와 하이브리드차를 공동 개발하며 특허를 공유해 당장 동맹을 끊기는 쉽지 않다.

양사의 향후 관계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존 위트하르 픽텟자산운용 애널리스트는 "무질서한 동맹 해제를 피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곪아가는 거버넌스 문제를 해결했지만, 별도의 경영진이 있는 동등한 두 파트너 간의 의사결정은 강력한 공동회장이나 최고경영자(CEO)의 부재로 인해 더 까다로워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