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와 기아(000270)가 인증중고차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두 회사는 지난해 5월 중소벤처기업부 권고에 따라 올해 5월부터 정식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데, 최근 인력 채용에 나서고 있다. 두 회사는 당장 이달부터 시범사업 격으로 각 5000대의 중고차를 매입하고 판매할 수 있지만, 업계는 하반기쯤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서울 동대문구 장한평 중고차 시장. /연합뉴스

5일 현대자동차그룹에 따르면 현대차(005380)는 오는 15일까지 글로벌 인증중고차 사업 전략 업무를 담당할 신입사원을 뽑는다. 해당 직무는 해외 인증중고차 사업 운영을 지원하고, 판매 지원 전략을 수립하며, 자동차 잔존가치 분석 등을 맡는다. 장재훈 현대차 사장은 최근 있었던 회사 신년회에서 “글로벌 고금리 상황에서 고객의 신차 구매 부담 완화를 위해 금융 프로그램의 경쟁력을 높이고, 인증 중고차 사업을 통해 신뢰도 높은 중고차를 제공하겠다”고 밝힌 바가 있다. 이번 채용은 이런 회사 전략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기아는 오는 11일까지 국내 인증중고차 고객센터를 관리할 직원을 채용한다. 이들이 맡게 될 업무는 고객상담 대응, 상담품질 관리, 시스템 구축 등으로, 고객센터 운영 전반을 책임지는 매니저(G2), 책임 매니저(G3) 직급이다. 1월 중 서류 전형을 거쳐 2월 말 최종 합격 여부를 가린다. 중고차 판매와 관련한 거의 모든 상담을 도맡는 고객센터의 설치는 사업이 임박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에 업계는 기아가 현대차보다 더 빠른 시기에 인증중고차 사업에 나서지 않겠냐는 예측을 하고 있다.

애초 현대차그룹의 인증중고차 사업은 이번 설 연휴를 전후로 시작될 전망이었으나, 시기는 하반기로 다소 밀린 분위기다. 2분기인 5월부터는 정식 사업이 가능한 상태다. 이를 위한 법적인 준비는 모두 끝났다는 게 현대차그룹의 입장이나, 기존 중고차 업계와 시장 조율 협의가 이뤄지는 중이다.

인증중고차는 자동차 제작사 또는 수입사가 직접 중고 매물을 사들여 일반 등에 판매하는 방식으로, 회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까다로운 품질 기준에 따라 중고차를 선별해 판매한다. 그만큼 성능이나 품질에 대한 신뢰도가 높다. 반면 이런 과정 때문에 시세는 다소 높은 편이다.

서울 성동구 장안평 중고차매매단지에 중고차들이 주차돼 있다. /뉴스1

현대차그룹은 출고 5년 내, 누적 주행거리 10만㎞ 이내의 현대차・기아 제품 중 200여 가지 항목의 품질 테스트를 거친 중고차를 시장에 선보인다는 구상이다. 또 출고 1~2년 내, 주행거리 1만㎞인 신차급 중고차도 판매한다. 기존 소비자를 위한 보상 판매와 온라인 판매 플랫폼을 구축한다. 현대글로비스가 운영 중인 중고차 중개 플랫폼 오토벨을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중고차 사업은 기본적으로 신차 판매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타던 차를 중고차로 팔고, 새 차를 구매하는 수요를 당길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신차 구매-중고차 판매-다시 신차 구매의 선순환을 만든다. 회사가 확보한 중고차는 저렴한 가격에 새로운 소비자에 판매되고, 신흥국 등으로 수출도 이뤄진다.

현대차그룹은 이런 신차-중고차 순환에 자동차 생애주기 데이터를 뽑아내려고 한다. 자동차 생산부터 폐차에 이르는 과정을 뜻하는 생애주기는 단순 자동차 생산과 판매뿐 아니라 금융과 보험, 운송, 정비 등의 분야로 확장이 가능하다. 소비자가 차를 어떻게 구매하고, 운영하며, 되파는지가 데이터로 정리된다. 물류 운송 분야, 신차 가격 책정에도 중고차 사업을 통해 쌓은 데이터를 응용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의 진출로 국내 중고차 시장은 더욱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그간 중고차는 개별 사업자의 허위 매물 등 신뢰도가 문제 됐는데, 대기업이 참여함으로써 시장 신뢰도가 함께 상승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어서다.

다만 현대차그룹이 블랙홀처럼 모든 중고차를 빨아들일 가능성도 점쳐진다. 기존 사업자와의 양극화가 심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다. 이 때문에 현대차와 기아 중고차는 사업 초기 점유율을 제한하기로 했다. 기존 사업자의 영역을 최대한 보장하려는 것이다. 현대차는 사업 시작 시점인 올해 5월부터 2024년 4월 30일까지 전체 중고차의 2.9%를 넘겨 판매할 수 없고, 2024년 5월 1일부터 2025년 4월 30일까지는 4.1%로 제한된다. 기아는 2024년까지 최대 점유율을 3.7%로 묶는다.

최근의 고금리 흐름은 현대차그룹의 중고차 사업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중고차 거래가 줄면서 수익성을 낮출 수 있다. 현대차와 기아가 시범사업을 당초 예정한 올 상반기가 아닌 하반기로 미룬 것도 이런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여겨진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누적된 재고 중고차는 11만2554대로,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1.8배 증가했다. 특히 본격적인 고금리가 시작된 지난해 9월 이후 재고가 빠르게 늘었다고 한다. 재고가 많다는 건 중고차를 팔려는 사람은 많은데, 사려는 사람은 없다는 의미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의 중고차 사업은 진출은 시장에 메기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라며 “다만 너무 양극화가 심해진다거나, 최근 고금리로 중고차 사업성이 저하되는 부분을 어떻게 해결할지는 관건이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