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게는 2년이 넘는 현대차(005380)의 구매 대기 문제가 국내 공장의 생산 독점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과 유럽에서 현대차 수요가 늘어나는 가운데 인기 모델은 국내 공장에서만 생산돼 반도체 수급난으로 만성화된 생산 적체를 더 심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현대차가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는 상황에서 인기 차종의 생산 물량을 해외 공장에 유연하게 배분할 수 있는 시스템이 도입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 차종 중 유독 제네시스 모델과 하이브리드·전기차 등 전동화 모델의 대기 기간이 길다. 예를 들어 제네시스의 인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GV80′의 경우 지금 주문하면 2025년에야 받을 수 있고, '싼타페' 가솔린 모델은 계약 후 9개월 뒤면 받을 수 있지만 하이브리드 모델의 대기 기간은 2년에 이른다.
2년 안팎에 이르는 대기 기간의 직접적인 원인은 반도체 공급난이지만, 이들 모델의 대기 기간이 긴 것은 국내 공장에서만 생산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제네시스 모델의 미국 판매가 늘어나고 있지만, 제네시스 전 차종 생산은 현대차 울산 공장에서만 이뤄지고 있다. 미국 현지에 앨라배마 공장에서는 '엘란트라'(아반떼), 싼타페, '투싼', '싼타크루즈' 등만 만든다. 싼타페의 경우 가솔린 모델만 미국에서 생산되고 하이브리드 모델은 국내 공장에서 생산돼 수출한다.
현대차는 올해 1~9월 미국 시장에서 57만대 가까이 판매했는데, 이 기간 앨라배마 공장에서 생산된 내수 물량은 24만여대다. 나머지 33만대는 국내 공장에서 생산해 수출했다. 국내 소비자의 대기 기간이 긴 상황에서 수출 물량도 감당하려니 대기 기간은 계속 길어지고 있다.
전동화 모델 역시 국내 공장이 생산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순수 전기차의 경우 '코나EV'가 인도와 체코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고 중국 베이징 공장에서도 현지 전략 전기차종이 생산되고 있지만, 미국과 유럽에서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현대차의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5′와 '아이오닉6′는 전량 국내 공장에서 생산된다. 미국과 유럽에서 현대차 전기차 수요가 늘어날수록 국내 소비자의 대기 기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반면 미국과 유럽에서 판매가 많은 투싼의 경우, 가솔린 모델은 물론 하이브리드 모델도 체코 공장에서 생산된다. 올해 1~9월, 현대차 체코 공장에서는 투싼이 17만대 넘게 생산됐는데, 이중 가솔린 모델이 10만대 이상, 하이브리드모델이 4만대, 플러그인하이브리드 모델이 2만여대였다. 덕분에 국내에서 투싼 하이브리드 모델의 대기 기간은 싼타페 하이브리드보다 짧은 1년이다. 체코 공장이 국내 공장의 과부하를 완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갈수록 길어지는 구매 대기 문제를 해소하고,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시장에서 브랜드 점유율을 높이려면 인기 차종을 해외 공장에서도 생산해야 하지만, 이런 합리적인 경영 판단이 나오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현대차가 생산 물량이나 차종을 결정하려면 노조와 합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대차 노조는 국내 고용이 감소할 것을 우려해 수요가 많은 모델의 해외 생산을 반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노조와 합의해 생산 물량을 결정하는 구조가 국내외 소비자의 구매 대기 기간을 늘리는 것은 물론 현대차가 글로벌 시장으로 외연을 확장하는 과정에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며 "합리적인 경영 판단이 이뤄지도록 적극적인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