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보조금이 ‘편법 재테크’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 특히 전기 화물차는 보조금이 차 가격의 절반에 달해 ‘보조금 쟁탈전’이 벌어질 정도로 인기가 많은데, 보조금을 받고 저렴하게 전기 화물차를 출고한 차주들이 기존 경유 화물차는 폐차하지 않고 그대로 운행하는 경우가 많아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환경부 무공해차 통합 누리집에 따르면 서울·대구·대전·세종 등에서 전기 화물차 보조금 집행이 대부분 이뤄졌다. 출고대수 기준으로 서울은 90%, 대구 95%, 대전 96%, 세종은 97%다. 전기 승용차 보조금이 출고대수 기준으로 서울 60%, 대구 84%, 대전 80%, 세종 81% 등을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전기 화물차 보조금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현대차 포터2 일렉트릭과 기아 봉고3 EV가 중고차 플랫폼 '엔카닷컴'에 매물로 올라온 모습. 누적 주행거리가 20~40㎞에 불과한 신차다. /엔카닷컴 캡처

전기 화물차는 승용차보다 보조금 규모가 더 크다. 서울 기준으로 현대차(005380) 포터2 일렉트릭(4060만~4274만원)과 기아(000270) 봉고3 EV(4185만~4370만원)는 국고 보조금과 지자체 보조금을 더해 총 보조금이 각각 2000만원이다. 스마트솔루션즈(구 에디슨EV) D2C(1980만원)와 대창모터스의 다니고3(1880만원)은 총 보조금이 각각 900만원이다. 차 가격의 절반에 달하는 금액이 보조금으로 지급된다. 경유차가 많은 화물차 시장에서 친환경차 보급을 확대해 환경오염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그런데 일부 화물차주는 보조금을 받아 전기 화물차를 싸게 산 뒤 웃돈을 붙여서 중고차로 되팔고 있다. 4200만원짜리 화물차를 보조금을 받아 2200만원에 사고, 중고차 시장에 3000만원 안팎으로 되파는 방식이다. 지자체 보조금이 빨리 없어지고 신차 대기 기간이 길어 이런 차량은 거래가 빈번하게 이뤄진다. 현대차(005380)그룹의 10월 납기표에 따르면, 이달 계약했을 때 포터2 일렉트릭은 약 1년, 봉고 EV는 약 7개월을 기다려야 신차를 받을 수 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전기 화물차 구매 시 기존 보유 차량을 폐차하는 비율은 2020년 5.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8월 말 기준)에는 2.7%로 더 줄었다. 정부는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된 경유 화물차를 줄이기 위해 전기 화물차 보급 확산을 펼치고 있지만, 전기 화물차가 경유 화물차를 대체하는 효과는 미미한 셈이다. 환경부는 전기 화물차 보급사업으로 작년 4000억원, 올해 5740억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이동규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친환경차 지원 정책의 합리적 개편을 위한 정책 토론회’에서 “차량 생애주기 동안 발생하는 환경 피해 비용은 경유 소형화물차가 450만~790만원, 전기 소형화물차가 230만~260만원”이라면서 “전기 소형화물차의 환경 편익이 220만~530만원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현재 2000만원에 달하는 보조금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또 “기존 경유 화물차를 폐차하는 경우와 아닌 경우를 구분해 보조금을 차등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외국의 경우 노후 경유차 폐차 여부에 따라 보조금 규모가 다르다. 예를 들어 프랑스는 전기차 구매 시 보조금을 최대 5000유로 지원하는데, 노후차를 폐차할 때 5000유로를 추가로 지원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기존 보유 차량의 폐차 여부와 상관없이 신차 구매 시 보조금을 일괄 지급한다.

아이오닉6. /현대차 제공

전기 화물차보다는 보조금 규모가 적지만, 전기 승용차도 비슷한 경우가 있다. 전기 승용차를 살 때도 차 가격에 따라 최대 1000만원 안팎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데, 보조금을 받아서 싸게 산 뒤 정상가에 중고차로 내놓는 식이다.

엔카닷컴에 따르면 지난 8월말 출시된 아이오닉6 전륜구동(2WD) 롱레인지 18인치 익스클루시브 모델이 중고차 매물로 나왔다. 이 차량은 누적 주행거리가 40㎞에 불과하고 내장재 비닐도 그대로인 새 차다. 차주는 보조금을 받아서 약 5500만원에 차량을 산 것으로 추정되는데, 5800만원에 매물로 내놨다.

환경부 관계자는 “전기차 보조금을 받아 부당이득을 취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보조금 제도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신차 출고 지연에 따른 일시적인 시장 왜곡이 원인이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상적인 상황에선 정부 보조금을 받지 않고 ‘중고 신차’를 웃돈 주고 구매하는 소비자가 없을 텐데, 최근엔 반도체 수급난과 신차 출고 지연으로 빨리 차를 받으려는 소비자들이 중고차 쪽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라면서 “일시적인 현상으로 제도를 개편하는 것은 근시안적인 정책이 될 수 있어 신중하게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화물차 보조금 규모가 승용차와 비교해 지나치게 크다는 지적에는 “전기 화물차의 주행거리가 전기 승용차 대비 짧고, 화물차 보조금은 2019년부터 시작해 초기에 충분한 지원을 할 필요가 있었다”면서 “보조금 규모는 매년 예산을 잡으며 다시 고려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