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완성차 기업의 임금·단체협약(임단협)이 무분규로 마무리되는 분위기다. 그러나 전동화 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인원 감축 논의를 생략하며 갈등을 미뤘다는 지적이 나온다.

1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005380)기아(000270), 르노코리아가 각각 올해 임금·단체협약(임단협)을 무분규로 마무리했다. 쌍용차의 임단협 주기는 3년으로, 올해 임단협 교섭을 하지 않았다. 노사 협상을 진행 중인 한국지엠을 제외하면 다른 국내 완성차 기업은 올해 임단협을 무분규로 끝냈다. 현대차는 4년 연속, 기아는 2년 연속 무분규로 임단협을 타결했는데, 이는 현대차와 기아의 역사상 각각 최초다.

현대차 울산공장 아이오닉5 생산라인. /현대차 제공

파업까지 가지 않고 임단협을 끝낸 건 긍정적이지만, 전동화 전환으로 인한 인력 감축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갈등을 단순 연기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금 협상으로만 논의가 끝나 갈등의 폭이 비교적 작았다는 의미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부품 수가 30% 이상 적어 생산 인력이 덜 필요해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은 앞다퉈 인력 감축에 대비하고 있다.

포드는 전기차에 사업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 지난달 미국, 캐나다, 인도 공장에서 3000명을 감원한다고 밝혔고, 폭스바겐은 작년 3월 전기차 사업 투자비를 확보하기 위해 최대 5000명을 감원한다고 발표했다. 헤르베르트 디스 전 폭스바겐 최고경영자(CEO)는 "폭스바겐이 전기차 전환에 실패하면 3만명을 감원해야 한다"며 노조와 대립하다 임기를 3년 앞두고 최근 돌연 사임하기도 했다. 독일은 노동이사제 시행으로 노조의 입김이 강해 사임이 아닌 사실상 해임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GM 등도 잇달아 대규모 감원 계획을 내놓는 가운데, 현대차그룹은 노조 반대로 감원 논의를 엄두도 못 내는 중이다. 2019년 현대차 고용안정위원회는 외부 자문단을 통해 2025년까지 인력의 20~40% 감축이 불가피하며, 그렇지 않으면 노사가 공멸한다는 분석을 받았다. 이후 현대차는 오히려 직원이 늘었다. 사업보고서 공시를 보면, 현대차 직원은 2019년 7만32명에서 작년 7만1982명으로 증가했다. 아울러 현대차는 정년퇴직으로 인한 자연감소분을 통해 인원을 감축하려고 하지만, 노조는 정년 연장을 요구 중이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현대차가 강성노조에 막혀 이번 임단협에서 오히려 전기차 전용 공장을 세우고 생산·기술직을 신규 채용하기로 했는데, 전동화로 인력의 30~40%를 감축해야 하는 상황에서 고민을 뒤로 미룬 것"이라면서 "자연 감소분만으로는 전동화 인력 감축에는 많이 부족한 데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시행으로 북미에서의 생산을 늘릴 필요도 커져 현대차의 고민이 늘었다"고 말했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현대차는 현재 연공급제 임금체계로 연구개발 조직 인원들끼리 임금이 동일하다"면서 "이로 인해 고임금을 줘야 하는 소프트웨어(SW) 인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번 임단협 과정에서 연구직의 별도임금체계 마련 시점을 내년으로 미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