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005380)그룹이 국내에 21조원을 투자해 전기차 생산 규모를 144만대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지 나흘 만에 미국에 총 13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닷새 동안 발표된 투자 계획 규모만 34조원이다. 현대차그룹은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경쟁이 격화되는 미래차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전략이다.

현대차그룹의 연이은 투자 계획에 대해 회사 안팎에서는 "한미 양국에 대한 투자 계획이 발표됐지만, 핵심은 미국"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금액으로만 보면 미국보다 국내에 계획된 투자 규모가 크지만, 국내에는 전기차 생산 규모 확대에만 집중된 반면 미국에 대한 투자 계획서에는 전기차를 포함해 미래 모빌리티의 핵심 사업 분야가 총 망라됐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국내 투자 계획은 시간을 두고 구체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22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면담을 마치고 미국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현대차그룹 제공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 22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만나 총 13조원의 미국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현대차그룹이 미국 조지아주에 7조원을 투자해 전기차 전용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한 다음 날이었다. 3년 뒤 완공될 이 공장에서는 연간 30만대의 전기차가 생산될 전망이다. 현대차는 이 공장 인근에 전기차 핵심 부품인 배터리 공장도 짓겠다고 했다.

조지아주 공장 신설 외에 정 회장이 바이든 대통령을 만난 뒤 깜짝 발표한 6조원의 추가 투자 자금은 로보틱스,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자율주행, 인공지능(AI) 등 미래 모빌리티의 핵심 산업으로 꼽히는 분야에 투입될 예정이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로봇 전문 업체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했고, UAM과 관련해서는 미국 워싱턴 D.C에 '슈퍼널'이라는 이름의 현지 법인을 세웠다. 자율주행 사업은 미국 업체 앱티브와 합작사 '모셔널'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반면 국내 투자 계획은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18일, 2030년까지 국내 전기차 사업에 21조원을 투자해 전기차 생산 규모를 144만대로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현재 현대차그룹의 연간 전기차 생산 능력은 35만대 수준으로, 현대차와 기아가 연간 벌어들이는 금액(영업이익 12조원)의 두 배 가까운 자금을 투입해 국내를 미래차 생산을 위한 핵심 기지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다.

국내 투자 계획에서 명확한 부분은 기아(000270)가 화성에 연간 10만대 규모의 목적기반차(PBV)를 생산하기 위해 짓겠다고 밝힌 공장 신설 계획 외에는 없다. 현대차그룹은 "(기존 공장의) 전기차 전용 라인을 증설하고, 기존 내연기관차 생산 라인에서도 전기차 혼류 생산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전기차 비율을 높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연기관차 모델을 생산하던 라인에서 전기차를 생산하는 방식으로 전기차 생산 규모를 확대하겠다는 의미다.

또 국내 투자 계획은 전기차 생산을 확대하는 데 집중돼 있고, 로보틱스나 UAM, 자율주행 등 현대차가 미래 사업으로 낙점한 분야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국내 투자는 대부분 전기차 생산 설비 개선이나 인프라 구축, 부품사 지원 등에 사용될 가능성이 크다.

브라이언 켐프(왼쪽) 미국 조지아 주지사와 장재훈 현대차 사장이 지난 21일 '현대차그룹-조지아주 전기차 전용 공장 투자 협약식'을 갖고 악수를 하고 있다./현대차 제공

현대차 노조는 "사측이 발표한 국내 투자 계획은 오히려 퇴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2021년 현대차 노사는 단체교섭 때 '산업 전환 대응 관련 미래 특별협약'을 맺고 '전동화 및 미래 신산업 전환기를 맞아 국내공장 및 연구소가 미래 산업의 선도기지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에 합의하면서 2025년까지 국내 공장과 연구소에 60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는데, 이번에 발표된 금액은 이전에 약속한 것보다 오히려 적다는 것이다. 노조는 사측이 국내 투자를 약속한 지 1년이 지난 지금도 투자 계획이 구체화되지 않았다는 점에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현대차는 "이번 국내 투자 내용은 전기차 분야에만 21조원을 투자하는 계획으로, 다른 미래 모빌리티 분야에서도 투자 결정이 이뤄지는대로 공개할 것"이라며 "인공지능과 미래 모빌리티 서비스, UAM, 로보틱스 등 미래 모빌리티 분야는 이미 국내에서 주도적으로 많은 투자와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