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오전 11시쯤 찾은 제주테크노파크(JTP) 전기차배터리산업화센터. 정문을 열고 센터 내부로 들어서자 '배터리 적재실' 내부에 빼곡하게 보관된 전기차 배터리 팩 250여개가 눈을 사로잡았다. 이 시각 제주의 기온은 영상 19도. 햇빛이 들지 않는 실내는 좀 더 선선했어야 하는데, 적재실 내부는 오히려 바깥보다 약간 따뜻했다.
이동훈 제주테크노파크 활용기술개발팀장은 "전기차 배터리는 원형이 변하지 않게끔 항온항습(일정온도와 일정습도)을 유지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전기차 폐배터리 보관 장소는 온도를 통상 18~24도로 설정해야 하는데, 우리 센터는 온도를 21~22도로 보다 까다롭게 유지하고 있다. 온도가 너무 낮으면 배터리 음극재가 부서지고, 온도가 너무 높으면 전해질 밀집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라 지방 보조금이 들어간 전기차는 소유자가 폐차하거나 말소할 경우 지방자치단체장에게 배터리를 반납해야 한다. 제주도는 배터리 회수 권한을 공공기관인 제주테크노파크에 위임했고, 제주테크노파크 전기차배터리산업화센터가 제주도 내 배터리 재사용 사업을 도맡고 있다. 센터는 2019년 개소했다.
전기차배터리산업화센터에 입고된 배터리는 우선 입고된 배터리 팩의 형태로 적재실에 보관된다. 전기차 배터리는 하나의 팩 형태로 전기차에 탑재되는데, 팩은 10여개 모듈을 묶은 형태, 모듈은 10여개 배터리셀을 묶은 형태다. 즉 전기차 배터리는 셀(Cell)→모듈(Module)→팩(Pack) 형태로 구성된 셈이다.
배터리 재사용을 향한 과정은 정확히 역순이다. 팩을 모듈로 분해하고, 모듈을 셀로 분해해 가며 재사용을 도모한다.
적재실에 보관된 배터리 팩이 맨 처음 옮겨지는 장소는 '팩 검사 준비장'이다. 육안 외형검사를 위해서다. 외부 충격으로 크게 손상된 배터리 팩은 여기서 걸러진다. 주로 사고 차량에 탑재된 배터리 팩이다. 이 팀장은 "사고 차량뿐 아니라 일반 차량에서도 외부 충격으로 손상된 배터리 팩이 종종 발견된다"면서 "전기차 배터리는 주로 차체 바닥에 배치되는데, 주행 중 과속방지턱에 배터리가 닿으며 충격을 입는 경우가 있다"라고 말했다.
외형검사를 통과한 배터리 팩은 '팩 검사실'로 입고된다. 충·방전시험을 통해 성능을 검사하는 장소다. 이곳에서 배터리 팩은 잔존용량(SOC), 잔존수명(SOH), 출력수명(SOP) 등 성능검사 3종, 균형상태(SOB), 발열상태(SOT), 안전상태(SOS) 등 안전검사 3종을 거쳐 A등급에서 E등급으로 분류된다. 우수 등급은 팩 형태로 신재생에너지 관련 에너지저장장치(ESS)나 양식장 무정전 전원장치(UPS) 등 중대형 ESS에 재사용되고, 비우수 등급은 모듈로 쪼개져 모듈별 진단을 다시 받아야 한다. 배터리 팩을 검사하는 시간만 48시간에 달한다.
모듈별로 쪼개진 배터리 팩은 모듈 검사실로 이동한다. 배터리 팩 검사 때와 같이 6종(성능검사 3종·안전검사 3종)의 진단을 거쳐 A등급에서 E등급으로 분류된다. 모듈 평가에 걸리는 시간은 24시간으로, 배터리 팩은 재사용을 위해 검사만 총 72시간 받는다. 이 팀장은 "안전하고 정확하게 배터리를 재사용하기 위해 제대로 된 성능·안전검사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우수 등급 모듈은 가로등 ESS나 가정용 ESS, 휠체어 배터리 등 소형 에너지 ESS에 재사용되고, 비우수 등급 모듈은 모듈에서 금속을 추출하는 민간 기업에 매각된다. 해당 기업들은 모듈에서 리튬·코발트·니켈·망간 등 희귀금속을 추출한다.
국내 전기차 보급이 점차 확대돼 폐배터리를 재사용하는 시장도 점차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전기차 폐배터리는 지난해 440개에서 2025년 8321개, 2029년 7만8981개로 늘어날 전망이다. 제주 전기차배터리산업화센터는 현재까지 약 250개 배터리를 회수했으며, 2030년에는 제주에서만 2만여개 배터리가 회수될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