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켈, 리튬, 코발트 등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 가격이 폭등하자 완성차 업체가 소재 직구(직접 구매)에 나섰다. 전기차 전환이 빨라지면서 배터리 협력사의 자체 조달에 의존하는 기존 구매 방식으로는 소재를 안정적으로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원자재 확보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일본 도요타는 물론 현대차(005380)그룹도 소재 확보를 위해 총력전을 펼칠 전망이다.

현대차는 주요 원자재의 전략적 관리를 위해 전담 조직을 운영하고, 원자재 가격 변동이 수익에 미치는 영향을 자동으로 산출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밝혔다. 서강현 현대차 재경본부장(부사장)은 지난 25일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원자재 공급망 관리(SCM) 리스크가 확대되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전사적인 협의체를 신설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러시아 무르만스크 지역에 있는 금속·광산 회사 노르니켈의 제련 공장 모습./로이터=연합뉴스

현대차는 협의체를 통해 설계부터 가격 인상까지 전사적이고 유기적인 대응 체계를 구축하고, 구매와 관련해 외부 전문기관 및 관련 업체와 협업도 진행하고 있다. 또 배터리 소재를 직접 확보하는 한편 금융 상품 등을 활용해 글로벌 소재 가격 급등에 대한 헤지(위험 회피) 방안도 검토 중이다.

GM, 도요타, 폭스바겐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도 소재 확보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필요한 소재를 직접 구매하거나, 해외 광산 지분을 확보해 장기적인 투자에 나서기도 한다. 배터리 제조사나 부품사보다 협상력이 큰 완성차 업체가 직접 구매에 나서면 거래 가격을 낮출 여지가 있고, 이를 통해 전기차 생산 비용도 관리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GM은 최근 호주 글렌코어PLC와 배터리에 사용할 코발트 공급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구체적인 계약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GM은 올해 공개한 전기 픽업트럭 쉐보레 '실버라도'와 GMC '허머'에 들어갈 자체 개발 배터리에 이 코발트를 사용할 계획이다. 글렌코어는 이미 테슬라, BMW와도 코발트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미국 포드는 호주 광물기업 레이크리소스와 아르헨티나에서 생산되는 리튬을 매입하는 사전 계약을 체결했다.

도요타는 일본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해외 자원 업체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광산 지분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안정적인 소재 판로를 확보하고 나선 것이다. 독일 폭스바겐은 세계 양극재 1위 업체인 벨기에 유미코어와 합작사를 세우기로 했다.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CEO는 최근 "리튬 가격이 미친 수준"이라며 "리튬 가격이 진정되지 않으면 직접 채굴, 정제 사업에 진출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라며 소재 사업에 진출할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