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메르세데스-벤츠의 AMG 모델을 구매한 직장인 김모(37)씨는 차 유지비 부담이 크게 늘었다. 김씨는 “동호회나 온라인 카페를 통해 차 정보를 얻는데 AMG 같은 고성능 차량은 일반 휘발유를 넣으면 성능이 떨어진다는 얘기를 듣고 고급 휘발유를 쓰고 있다”며 “예상보다 유지비 부담이 크다”라고 말했다. 포르셰의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마칸 GTS’를 구매한 윤모씨도 최근 정비소를 다녀온 이후 고급 휘발유만 찾고 있다. 정비소 엔지니어가 “이 모델은 고급 휘발유를 넣어야 하는 모델”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최근 고가의 수입차 판매가 늘어나면서 고급 휘발유 수요도 늘어나고 있다. 고급 수입차 대부분은 옥탄가가 높은 고급 휘발유 주유를 권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입차 업체와 업계 전문가들은 고급 휘발유 사용은 ‘권고’ 사항일뿐 일반 휘발유를 넣어도 성능에 크게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고급 휘발유는 일반 휘발유보다 가격이 10~15%가량 비싸다.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지난 11일 기준 전국 주유소의 평균 휘발유 가격은 L당 1980.4원인데, 고급 휘발유 가격은 L당 2193.6원이었다. 서울 일부 지역의 경우 고급 휘발유 가격이 L당 2500원을 넘는 경우도 많다.

지난 8일 서울의 한 주유소 모습. 일반 휘발유 가격은 L당 2292원, 고급 휘발유 가격은 L당 2593원이다./뉴시스

일반 휘발유와 고급 휘발유를 구분하는 기준은 옥탄가다. 우리나라 옥탄가 기준은 RON(Research Octane Number)으로, 옥탄가가 91 이상~94 미만이면 일반 휘발유, 94 이상이면 고급 휘발유로 분류된다. 옥탄가는 자동차 엔진에서 점화플러그가 작동하기 전에 연료가 폭발하면서 총을 쏘는 듯한 금속 소음이 발생하는 이른바 ‘노킹(knocking)’ 현상과 관련된 수치다.

노킹 현상이 자주 나타나면 에너지 효율이 낮아지고 엔진 수명도 단축되는데, 노킹 현상을 막아주는 안정성을 수치화한 것이 옥탄가다. 옥탄가가 높은 휘발유일수록 엔진 내 이상 폭발을 일으키지 않고 연소가 잘되기 때문에 값이 비싸다.

포르셰·페라리 등 슈퍼카 브랜드는 물론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볼보 등 유럽 고급 브랜드의 모델 대부분은 옥탄가가 95~98 이상인 휘발유를 넣도록 권고한다. 국내 수입차 업체 관계자는 “고급 모델의 경우 엔진을 설계할 때 연료의 옥탄가를 정해놓고 이에 맞게 압축비와 연료 분사량, 점화 시기 등을 미리 설정한다”면서 “엔진 설정에 맞는 옥탄가를 소비자에게 안내하기 때문에 고급 수입차의 경우 고급 휘발유를 넣는다는 공식이 생겨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현대차(005380)기아(000270), 한국GM, 르노, 쌍용차 등 국내 브랜드가 생산하는 모델은 보통 옥탄가가 92 정도에 맞춰 엔진을 설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메르세데스-벤츠 'C클래스' 주유구. 옥탄가 95(RON 95) 이상의 고급 휘발유를 주유하길 권고하는 표시가 있다./연선옥 기자

수입차 업체는 고급 휘발유를 권고하지만, 꼭 고급 휘발유만 넣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수입 브랜드 한 딜러사 관계자는 “옥탄가 91 이상인 휘발유의 경우 성능이나 연비에 큰 문제가 없다고 안내하고 있다”며 “전문적인 레이싱을 즐기는 경우가 아니라면 일반 휘발유를 써도 운전자가 느끼는 차이는 크지 않다”라고 말했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역시 “높은 옥탄가 휘발유를 주유할 것을 권고하는 이유는 차량의 주행 성능을 최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것”이라며 “소비자에게 안내하는 옥탄가 기준은 차량 성능을 최적화할 수 있는 기준을 알리는 것으로 권고 사항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메르세데스-벤츠 차량 안내서에는 “옥탄가 기준 이하의 휘발유를 주유할 경우 토크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라고만 안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