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중국 업체와 일부 완성차 업체만 사용해 온 리튬·인산·철(LFP) 배터리가 니켈 가격 급등에 다시 주목받고 있다. 완성차 업체들은 대부분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를 전기차에 주로 탑재하는데, LFP 배터리를 모든 스탠다드 트림(하위 트림)에 탑재하겠다고 선언한 테슬라 외에 최근 전기차 신흥 강자로 주목받는 리비안이 스포츠유틸리티차(SUV)에 LFP 배터리를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14일 외신에 따르면 리비안은 2021년 4분기 주주서한을 통해 전기 트럭과 SUV에 LFP 등 새로운 유형의 배터리셀을 탑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LFP 배터리 탑재 이유에 대해서는 비용절감 및 원자재 수급난 때문이라고 밝혔다. RJ 스캐린지 리비안 CEO는 리비안과 협력사들이 코로나 사태와 우크라이나 사태 등 다양한 이유로 글로벌 공급망 제약에 직면해있다며 이미 협력사로부터 LFP 배터리를 공급받고 있고 자체 생산 능력도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LFP 배터리는 기존에도 값싼 배터리로 알려졌는데,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로 니켈과 코발트 등의 가격이 급등하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LFP 배터리는 NCM 배터리에 들어가는 양극재 원료보다 가격이 저렴한 철과 인산을 사용해 ㎾h당 LFP 배터리 셀 가격이 통상적으로 쓰이는 NCM 배터리보다 약 30% 저렴하다. NCM 배터리보다 에너지 밀도가 낮아 성능은 떨어지지만 과충전으로 인한 화재 가능성이 낮고 리튬이온 이동에 따른 배터리 셀 열화 정도가 크지 않아 수명도 비교적 길다.
완성차 업계는 NCM 배터리의 원자재가 되는 니켈과 코발트 등의 가격이 폭등하면서 원가부담이 늘고 있다. 한국자원정보서비스에 따르면 니켈 가격은 11일 기준 톤당 4만2995달러를 기록했다. 한 달 전인 2월 중순 니켈 가격은 2만3000달러 선이었다. 니켈 외에 코발트 가격도 전년 평균 대비 60% 이상 오른 톤당 8만2400달러를 기록했다.
원자재 가격의 상승은 벌써 전기차 가격에 영향을 주고 있다. 테슬라는 원자재 가격 인상을 이유로 지난주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시장에서 전기차 가격을 올렸다. 테슬라는 지난 13일 한국 시장의 가격도 연이어 올렸는데, 모델3와 모델 Y는 트림별로 100만~200만원씩 올랐다. 테슬라는 지난해 공급난 등의 이유로 총 12차례 판매가 인상을 단행한 바 있다.
LFP 배터리의 사용도 늘고 있다. 지난달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가 2021년 연간 양극재 사용량을 조사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LFP배터리의 사용량은 1년 만에 246.5%% 증가했다. 대표적인 NCM배터리인 NCM811의 사용량은 235.6%, NCM622의 사용량은 64.3% 늘어난 데 그쳤다. LFP배터리의 약진은 중국 전기차업체들과 테슬라의 영향이 컸다.
가격에 대한 압박으로 완성차 업계 제조사들은 대부분 LFP 배터리와 NCM 배터리를 라인업별로 나눠 탑재할 예정이다. 포드는 SK이노베이션(096770)과 합작한 '아이온 부스트 프로' 브랜드 산하 저가 전기상용차에 LFP 배터리를 탑재할 계획이며, 메르세데스 벤츠는 EQA, EQB 등 비교적 저렴한 모델라인업에 2025년부터 LFP 배터리를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차(005380) 역시 중저가 모델을 중심으로 LFP 배터리를 탑재할 계획이며 원가를 줄여야하는 쌍용차도 중국 BYD와 합작해 선보일 전기차에 LFP 배터리를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NCM 배터리의 점유율이 견고할 것이라는 시각도 건재하다. LFP 배터리가 성능을 높이는 동안 NCM 배터리도 가격을 낮추면서 경쟁력이 좋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배터리 업계에서는 NCM을 이루는 값비싼 광물 중 코발트 함량을 줄이고 니켈 함량을 90% 이상으로 끌어올린 '하이니켈 배터리' 양산을 늘리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지금까지 전기차에 일반적으로 들어가는 NCM 배터리의 가격이 1㎾h당 120달러 수준이라면 하이니켈 배터리는 100달러 미만이다.
폐배터리 활용도 중요한 요소다. NCM 배터리는 코발트, 니켈, 리튬 등 핵심 광물의 함량이 높아 ㎾h당 23달러가량을 회수할 수 있다. 반면 LFP 배터리는 수명이 다한 후 회수할 수 있는 광물이 리튬에 불과해 회수 가치가 ㎾h당 4달러 수준이다.
SNE리서치는 "LFP 배터리가 삼원계 배터리보다 가격이 저렴할 순 있어도 같은 에너지 밀도로 끌어올리려면 부피와 셀을 늘려야 하는 데다 재활용·재사용까지 고려하면 LFP 배터리를 쓰는 것이 불리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국내 배터리업계는 NCM 배터리 개발을 중심으로 하되, LFP와 다양한 배터리 제품을 개발해 사업다각화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완성차 업계가 LFP 배터리 채택을 늘려도 저가나 보급형 모델에 국한될 뿐, NCM 배터리의 사용량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국내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광물가격은 사이클이 있어 이번에 니켈이 급등했던 것처럼 과거에는 리튬 가격이 폭등했던 적이 있다"며 "LFP든 NCM이든 당분간 모든 배터리는 성장하게 될텐데, LFP는 에너지 효율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기 전까지는 프리미엄 모델에는 쓰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