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005380)그룹은 지난해 8월 러시아 자동차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프랑스 르노그룹이 러시아 완성차 업체 아브토바즈를 인수한 2017년 이후 처음 월간 판매량 1위를 기록했다.
현대차그룹이 러시아에서 선전하는 비결 중 하나는 협력사 동반 진출이다. 주요 부품 협력사들이 현대차와 함께 러시아에 진출하면서 가격 경쟁력을 갖췄고, 러시아 정부가 요구하는 현지화 비율도 맞출 수 있었다.
현대차그룹의 러시아 판매가 늘어나면서 협력사들은 러시아 진출을 더 확대했다. 특히 현대차그룹과 협력사들은 러시아를 유럽 시장 공략을 위한 거점으로 삼았다. 비용이 낮은 러시아에서 제품을 생산하면 유럽으로 향하는 제품의 물류비도 절감할 수 있다고 판단해 생산망을 확충했다. 현대차그룹의 부품 계열사 현대위아(011210)는 지난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엔진 공장을 설립했다. 그동안 러시아에서 이뤄지는 자동차 생산 공정은 스탬핑, 용접, 조립 정도였는데, 엔진 생산으로도 확대됐다.
그런데 러시아가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러시아 현지에 광범위한 생산망을 구축하던 현대차그룹에 비상이 걸렸다. 미국과 동맹국들이 강력한 대(對)러시아 경제 제재 방안을 내놓으면서 러시아 판매 위축은 물론, 생산망 관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당장 서방국의 제재 조치로 러시아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 러시아 자동차 판매가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 합병한 이후 서방의 제재가 나온 당시에도 러시아 경제가 침체하면서 자동차 판매가 급감했다. 코트라에 따르면 2012년 293만대였던 러시아의 연간 자동차 판매는 크림반도 사태 이후 2016년 130만대 수준으로 축소됐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러시아 경제가 크게 꺾이면 현지에 생산 설비를 구축한 업체의 실적 악화가 불가피하다.
서방국의 수출입 통제 조치가 강화되는 경우 국내 업체의 생산 차질도 우려된다. 업계 관계자는 "특히 세계 자동차 산업은 2년 넘게 이어진 코로나 사태와 반도체 등 원자재 공급난 때문에 생산 차질이 만성화된 상태"라며 "우크라이나 사태가 이런 요인과 복합적으로 작용할 경우 러시아에 생산망을 구축해 놓은 국내 업체의 어려움이 커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지 않는다면 서방국의 대러 제재를 지나치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에너지경제연구원 관계자는 "러시아 경제 규모가 커졌고, 서방국의 경제 제재가 이어지더라도 글로벌 기업이 제재를 우회하면서 러시아와 교역을 지속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때문에 러시아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현대차그룹의 전략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폭스바겐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가 러시아 내 생산을 축소하는 가운데 오히려 투자를 확대해왔다. 지난 2020년에는 GM의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을 인수해 생산을 확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