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으로 평화유지군 진입 명령을 내리면서 자동차 업계가 예의주시하고 있다. 수 주간 지속된 긴장감으로 관련 지역에서 근무하던 직원들은 대부분 대피한 상태지만 어느 정도의 손실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 산업은 대 대(對)러시아 수출의 상당부분을 담당하고 있으며 부품은 현지에서 생산하거나 원자재를 수급하기도 한다.

현대자동차는 2010년 준공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에서 연간 약 23만대를 생산하고 있다. 2020년에는 GM으로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을 인수해 올해부터는 유럽 및 북미시장으로 수출하는 주력 모델 투싼과 펠리세이드, 기아의 스포티지 등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생산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공장들은 분쟁 지역으로부터는 상당히 거리가 있어 직접적인 피해는 없으나, 유럽으로부터 부품을 공급받는 만큼 미국과 유럽연합(EU)의 경제 제재가 있을 경우 부품 수급 및 생산 차질이 예상된다.

22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뉴스 속보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유럽기업인연합(AEB)에 따르면 현대차와 기아(000270)는 지난해 러시아에서 37만3132대의 차량을 판매했다. 러시아의 신차시장 규모는 세계 12위이며 유럽 기준으로는 5위에 오를 정도로 작지 않은 시장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러시아 공장은 분쟁지역과 멀어 직원들이 대피할 필요가 없고 우크라이나 지역에 있던 반조립공장은 철수해 현재 대리점만 남아있어 인명피해보다는 판매에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본다"며 "분쟁으로 인한 경기 위축과 루블화 약세가 우려돼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우크라이나와 인근 지역에서 부품 등을 공급받는 쌍용차에도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쌍용차의 대 러시아 수출은 2014년, 대 우크라이나 수출은 2017년 이후 중단됐지만 현재 협력사를 통해 우크라이나로부터 알루미늄을 포함한 원자재를, 인접 국가인 슬로바키아에서는 조립용 부품을 공급받고 있어 국경이 폐쇄될 경우 생산에 차질이 생긴다.

부품사들 사이에서도 긴장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타이어그룹의 유럽시장을 담당하는 한국타이어 유럽홀딩스는 우크라이나에 타이어를 판매하는 한국타이어 우크라이나 판매법인을 두고 있다. 무력 충돌 가능성이 높아지며 한국타이어는 지난주부터 한국인 직원들을 국내로 대피시켰으며 현재는 모두 우크라이나 지역을 빠져나왔다.

금호타이어(073240)넥센타이어(002350)는 분쟁 지역 근처에 공장이나 지사를 따로 두고 있지 않지만 타이어업체들의 가장 큰 수출 시장이 유럽인 만큼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국타이어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타이어업계는 러시아를 포함한 유럽 시장(38%)에 타이어와 튜브를 가장 많이 수출했다. 또한 무력 충돌이 유가와 해상 운임 상승에 영향을 주면서 당분간 실적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현대차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에서 근로자들이 현지 전략형 소형차'쏠라리스'를 조립하고 있다. /현대차 제공

공장이나 주재 직원이 없더라도 러시아로 수출을 많이 하는 국내 자동차 업계의 손실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날 오전 기준 달러·루블 환율은 달러당 80루블에 육박하며 루블화 가치는 2020년 11월 이후 최저치로 추락했다. 우크라이나 흐리브냐화의 가치도 1% 떨어졌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할 당시 무력 충돌로 승용차(-62.1%)가 가장 큰 수출입 피해를 입었고 3위는 타이어(-55.9%)였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러시아 수출 절반가량은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이 차지했다. 자동차는 연간 24억9600만달러(약 3조원)어치를, 자동차 부품은 14억5400만달러(1조7400억원)를 수출했다. 러시아 전체 수출에서 자동차와 관련 부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29.2%와 15%로, 관련 품목이 전체의 44%에 달한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는 지난주 정부에 공급 차질이 우려되는 품목에 대해 한시적으로 긴급할당관세를 적용하고, 대러시아 수출 제재로 피해를 보는 기업에 대해서는 유동성 지원을 해달라고 건의했으나 아직 답변은 받지 못했다. 협회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국지적 충돌이 발생할 경우 러시아 현지의 내수 판매는 10%가량 감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전면전으로 확대될 경우에는 약 29%까지 줄어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