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오전 10시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지하 1층 코로나19 선별진료소.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2년 만에 오프라인으로 열리는 CES 2022에 참가하기 위해 미국행 비행기에 탑승하려는 국내 기업인과 취재진들이 코로나 검사를 받기 위해 긴 줄을 섰다. 이곳에 여권을 제시하고 검사비 12만6000원을 내면 PCR 검사를 받을 수 있다.

코로나 검사 결과를 통보받기까지 4시간 정도가 걸리기 때문에 평소보다 훨씬 일찍 공항에 도착해야 한다. 미국 내 오미크론이 확산하고 이에 따라 코로나 확진자가 폭증세를 보이면서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지난해 12월부터 미국에 도착하는 모든 항공 여행객들에게 탑승 24시간 이내에 실시한 코로나19 음성 확인서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그루브몰에 인파가 몰린 모습. 오미크론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연선옥 기자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공항 내 식당과 카페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권고하기 때문에 긴 시간을 공항 내 의자에서 보내야 했다. 검사 결과는 메일과 스마트폰 문자로 통보되고 음성이 나오면 선별진료소에서 영문으로 된 음성 확인서를 발급해준다.

항공권 발권 과정에서 항공사 직원은 가장 먼저 ‘24시간 내 발급받은 영문 확인서(코로나 음성)가 있느냐’고 묻는다. 이 서류와 백신 접종 확인서를 제출해야 항공권을 받을 수 있다.

오랜 비행을 마치고 도착한 미국 LA와 라스베이거스 입국 절차는 비교적 수월하다. 코로나 확산에 따라 미국을 찾는 방문객이 크게 줄어들면서 입국 심사 절차도 빠르게 이뤄졌다. 코로나 이전에는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 밖으로 이동하는 데 최소 한 시간이 걸렸다면, 지금은 20분 정도면 충분하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에 설치된 코로나 19 무료 간이 검사소 모습./연선옥 기자

입국 심사를 진행하는 담당자들도 입국자들에게 방문 목적 정도만 확인할 뿐 PCR 검사 여부는 묻지 않았다. 코로나 음성 확인서가 있어야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입국 심사는 마스크 착용을 당부하는 조언과 함께 3분이 걸리지 않았다.

미국 땅을 밟기 전까지는 상당히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막상 미국에 도착하니 방역은 공항에서부터 상당히 느슨했다.

연말 휴가철을 마치고 새해가 시작된 지난 3일(현지 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다운타운 인근 그랜드 센트럴 마켓에는 평일 오전에도 사람들로 붐볐다. 오미크론 확산으로 미국 전역에 코로나 일일 확진자가 40만명에 육박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행인 중에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이 적지 않았다. 음식을 파는 상점 곳곳에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는 포스터가 붙어있었지만 그뿐이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그랜드 센트럴 마켓에는 마스크 착용을 요구하는 포스터가 곳곳에 붙어있다./연선옥 기자

같은 날 오후 다운타운 인근의 고급 쇼핑몰 그로브몰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상당한 인파 중에 마스크를 쓴 사람도 많았지만, 마스크를 쓰지 않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도 곳곳에 눈에 띄었다. LA 카운티는 하루 수만명의 확진자가 발생하자 일부 공공시설이나 식당에서 백신 접종 확인서를 요구했지만, 대부분의 상점은 이를 필수로 요구하지는 않았다.

건물 내 보안 담당자들이 간혹 “백신을 맞았더라도 안전을 위해 마스크를 써주세요”라고 외쳤지만, 강제하지 않았다. 또 거리 곳곳에 코로나 19 자가 테스트를 할 수 있도록 간이 천막이 마련돼 있었지만, 이용자는 몇명에 불과했다.

건물 입구마다 기계식 체온계를 설치해 체온을 측정하고, 식당을 포함해 실내 시설은 백신 접종 후 14일이 지나야 이용할 수 있는 강력한 ‘백신 패스’를 강요하는 우리나라 상황과 비교하면 미국의 방역은 온전히 개인에게 맡겨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한 호텔 내 모습. 마스크를 써달라는 표지판이 곳곳에 설치돼 있고 관련 방송도 반복해서 나왔지만,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다./연선옥 기자

LA에서 400㎞ 떨어진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방역 체계도 LA와 비슷했다. 2년 만에 오프라인으로 개최되는 세계 최대 정보통신기술(ICT)·가전 전시회 ‘CES 2022′를 앞두고 호텔마다 사람들로 붐볐지만,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개인의 책임에 맡겨진 느슨한 방역은 확진자 폭증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최근 7일 미국 전역의 일평균 확진자수는 40만명에 육박한다. 일주일 전과 비교해 확진자 수가 두 배로 늘었다. 특히 거주 인구가 많은 동부와 서부 대도시에서 매일 수만명의 확진자가 쏟아지고 있다. LA에서도 하루 2만~3만명의 확진자가 나온다.

그럼에도 미국 정부는 셧다운이나 방역 강제 등 급진적인 조치보다 중증 환자와 의료 시스템 관리를 초점으로 대응하고 있다.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은 “지금과 같은 감염 사례 가속화는 전례가 없는 일이고 기존의 확산 사례를 뛰어넘었다”면서도 “백신과 부스터 샷을 맞은 사람은 오미크론 변이에 감염되더라도 증상이 없거나 약하기 때문에 앞으로 입원 환자와 사망자 추이에 방역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