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공급난이 이어지고 있는 차량용 반도체와 관련해 삼성전자(005930)현대차(005380)의 긴밀한 협력을 주문하면서 양 사가 구체적인 협력에 나설지 관심이 집중된다. 미래차의 핵심으로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는 가운데 세계적인 반도체 기술을 가진 삼성전자와 세계 4위 완성차 업체 현대차가 협력하면 국내 산업 생태계가 강화되고 많은 부가가치가 창출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업계에서는 삼성과 현대 간 실질적인 협력이 이뤄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세계적인 공급 부족이 발생한 차량용 반도체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은 삼성전자나 현대차가 직접 생산할 가능성이 크지 않고, 미래차에 필요한 반도체는 두 업체가 어떻게 협력해야 시너지를 낼지 판단하기 어려운 상태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6대 대기업 총수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문 대통령,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현모 KT 대표이사./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지난 27일 국내 6대 대기업 총수를 만난 자리에서 두 기업의 협력을 강조했다.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으로 완성차 생산이 차질을 빚는 상황이 1년 동안 지속된 데다, 미래차 시장에서는 차량용 반도체 수요가 계속 늘어나는 상황이 반영돼 나온 메시지였다.

앞서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 3월 현대차, 삼성전자, 현대모비스(012330), 자동차산업협회, 반도체산업협회, 한국자동차연구원 등이 참여한 '미래차·반도체 연대 협력 협의체'를 발족시켰다. 단기적으로 차량용 반도체 수급 불안정 관련 대책을 모색하고, 장기적으로는 미래차·반도체 시장에서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것이다. 이어 5월에는 산업부, 삼성전자, 현대차 등이 차량용 반도체 수요·공급 기업 간 연대·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협약도 체결했다.

양사가 협력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지만, 당장 협약에 따른 성과가 나오기는 어렵다는 게 업계 평가다. 차량용 반도체는 크게 두 분야로 나뉘는데 하나는 공급난이 발생하고 있는 MCU이고, 다른 하나는 전기차·자율주행차 등 미래차에 많이 들어가는 전력반도체와 고품질 시스템반도체다.

전기차 '아이오닉 5'를 생산하고 있는 현대차 스마트 공장./현대차 제공

우선 MCU는 삼성이나 현대차 모두 관심 있는 품목이 아니다. MCU 설계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지 않지만, 안전과 연계되기 때문에 높은 수준의 안전성과 내구성이 요구된다. 게다가 다품종 소량생산이라 수익성이 높지도 않다. 현재 MCU를 대량 생산해 과점하고 있는 글로벌 업체와 경쟁하기 위해 삼성전자나 현대차가 대규모 투자에 나설 가능성이 있는 분야가 아니라는 의미다.

삼성과 현대차가 주목하는 반도체는 미래차에 탑재되는 제품이다. 전기차에서 전력을 관장하는 전력반도체나 자율주행과 인공지능(AI) 영역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수요가 늘어나는 시스템반도체가 대표적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11월 차량용 시스템반도체 3종을 공개했다. 차내 자율주행,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구동하는 '두뇌' 역할을 하는 고품질 시스템반도체를 생산해 완성차와 전장부품 업계를 대상으로 시장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현대차도 이 분야에서는 적극적이다. 호세 무뇨스 현대자동차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 겸 북미 권역 본부장은 지난 10월 현대모비스를 중심으로 그룹이 차량용 반도체를 자체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차에 필요한 반도체를 직접 설계하고 개발할 역량을 내재화하겠다는 것이다.

고부가가치를 내는 시스템반도체는 양사 모두 개발 필요성을 통감하고 있지만 협력을 논의하기엔 이른 시점이다. 자체적인 개발 능력을 확보하고 관련 기술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초기 단계인 데다, 투자 계획조차 아직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11월 초고속 통신칩, 고성능 프로세서, 전력관리칩 등 차세대 차량용 시스템반도체 3종을 공개했다./삼성전자 제공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협의체를 구성한 것은 빠르게 성장하는 미래차 시장에서 국내 기업이 큰 역할을 하길 바라는 정부가 판을 깔아준 것"이라며 "기업 간에 구체적인 논의가 오간 것은 없다"라고 말했다. 두 기업이 자체적으로 내부 역량을 어느 정도 갖춰야 협력을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이 협의체 논의는 수급난이 발생한 반도체 품목 정보를 공유하는 데 그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두 기업이 협력할 가능성이 있다. 무뇨스 사장은 반도체 내재화 계획을 밝히면서도 "반도체 생산에 나서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반도체 생산이 이뤄지려면 삼성전자와 같은 반도체 생산 기업과 협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만 고성능 반도체 파운드리 공정을 갖추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와 삼성전자가 함께 차량용 시스템반도체를 개발할 가능성도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