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005380)·기아(000270)·한국GM 등 국내 완성차 업체에 브레이크 부품(캘리퍼)을 공급하는 HM금속은 현재 파산 절차를 밟고 있다. 지난 2017년 4월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가 종결된 이후 경영 정상화에 힘써 왔지만, 지난해 코로나 사태에 이어 올해 반도체 공급난까지 겹치며 경영 상황이 악화된 탓이다.
스포츠유틸리티차(SUV)에 탑재되는 루프렉(차 지붕에 짐을 싣게 하는 부품)을 만드는 중소 부품사 진원은 최근 회생절차를 시작했다. 현대차·쌍용차에 부품을 납품하는 1차 협력업체이지만, 반도체 사태로 완성차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자 자금 사정이 악화됐다.
글로벌 자동차 산업이 전기차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는 가운데 코로나 확산과 반도체 수급난으로 완성차 생산이 감소하면서 내연기관 부품사의 줄도산이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영세한 부품사들이 전동화 전환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 부품사 상당수가 몰락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부품사의 위기감은 커지고 있지만, 최근 정부는 "부품사의 경영 상황이 개선되는 추세"라는 엉뚱한 진단을 내놓았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정책 성과를 부풀리기 위해 현업의 어려움을 외면한다"는 불만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 21일 미래차를 포함한 '혁신성장 빅(big)3 추진회의'를 열고 관련 산업 동향을 점검했다. 이 회의에서 산업통상자원부는 "국가 차원의 미래차 로드맵을 수립해 체계적으로 대응한 결과 성과가 가시화되고 있다"며 전기차·수소차의 내수 판매·수출 실적이 크게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반도체 수급 문제 장기화로 인한 완성차 생산 감소, 미래차 전환 투자 부담 등으로 국내 부품 기업의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지만, 경쟁국 대비 반도체 사태로 인한 감산 규모 최소화 등 상대적으로 선방하며 경영 상황이 전년 대비 개선 추세"라고 진단했다.
정부가 부품사의 경영 상황이 개선되고 있다고 본 근거는 상장사의 실적 개선이었다. 산업부는 주식시장에 상장된 82개 부품사의 공시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해 1~3분기 국내 자동차 부품사의 매출액이 전년 대비 17.4%, 영업이익은 253% 증가했다고 밝혔다.
자료가 나오자 업계에서는 현장 분위기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진단이라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한 부품사 관계자는 "전기차 보급 확대로 이익이 증가한 부품사는 대기업 등 일부에 불과하다"며 "지역 산업단지에 입주한 중소 부품사들은 경영난이 악화되면서 직원 수를 줄이며 버티고 있다"라고 말했다.
자동차산업연합회가 최근 국내 완성차·부품업체 300개사와 자동차업계 종사자 405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 결과도 정부의 진단과는 온도차가 상당하다. 해당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자동차 업계의 총 매출액 평균은 전년보다 2.3% 감소한 2696억원이었다. 대기업은 0.8% 감소하는 데 그쳤지만 중견기업 5.3%, 중기업 5.7%, 소기업 11.0%로, 규모가 작을수록 매출이 더 크게 줄었다. 올해 반도체 공급난에 따라 완성차 업체의 감산이 이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부품사들의 경영 상황은 더 악화됐을 가능성이 크다.
또 조사에 따르면 응답 업체의 56.3%는 아직 미래차 분야에 진출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기업의 23.7%는 미래차 사업에 진출은 했지만, 해당 분야에서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 국내 자동차 업체의 80% 정도가 미래차 분야로 전환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정부는 "올해까지 기업활력법에 따른 자동차·부품기업의 사업재편 승인 건수는 2020년 22개사 대비 77% 증가한 39개사(누적 63개사)로 부품기업의 미래차 전환도 빨라지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국내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경영 실태를 파악해야 할 대상은 이익이 증가하는 우량 기업이 아니라 산업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영세 업체들"이라며 "치하해야 할 성과가 있는 것은 맞지만 여기에 도취해 있으면 도움이 절실한 자동차 생태계를 지원할 적기를 놓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