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서부 오카야마 서킷에서 지난 13~14일 열린 내구 레이스 ‘슈퍼 타이큐’에는 아키오 ‘모리조’ 도요다 도요타 사장이 ‘루키 레이싱’팀 드라이버로 대회에 참가했다. 모리조는 스포츠 마니아인 도요다 사장이 스포츠카를 운전할 때 쓰는 드라이버 이름이다.

드라이버만큼 주목받은 것은 도요다 사장이 직접 운전한 32번 ‘코롤라 스포트’였다. 코롤라의 레이스 성적은 최하위 수준이었지만 수소를 연료로 달리는 내연기관차라는 점에서 관심이 집중됐다. 도요타는 내년 시즌에도 수소를 태워 구동 에너지를 얻는 이 모델로 출전하겠다며 수소 엔진차에 대한 연구개발을 지속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도요타가 개발하겠다는 수소 엔진차는 수소로 전력을 생산해 구동되는 수소 연료전지차와는 달리 수소를 태워 엔진을 돌려 차를 움직인다.

일본 내구 레이스에 수소 엔진차를 타고 참가한 아키오 도요다 도요타 사장./로이터

전 세계 완성차 업체가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배터리 전기차 개발에 나서는 가운데 도요타가 수소 내연기관차 개발을 지속하겠다고 밝히면서 이 실험에 관심이 쏠린다. 코롤라의 수석 엔지니어 나오유키 사카모토는 수소 엔진차가 언제 상용화될지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지만, 글로벌 양산 모델의 상당수가 트랙에서 탄생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도요타가 장래 일반 소비자를 위한 수소 엔진차를 내놓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도요타가 수소 엔진 개발에 나선 이유는 일본의 에너지 믹스와 연관이 크다.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를 얻기 어려운 일본의 환경적 특성상 배터리 전기차가 근본적으로 탄소 배출을 줄이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판단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다임러·볼보·재규어랜드로버·BYD 등 6개 완성차 업체는 지난 12일 영국 글래스고에서 종료된 ‘UN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에서 ‘무공해차 전환 서약’에 참여했다. 2035년 주요 시장에서, 2040년부터는 전 세계에서 전기차 등 배출 가스가 없는 승용차만 판매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도요타는 세계 대부분이 전기차로 전환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여기에 서명하지 않았다.

서킷을 달리고 있는 도요타의 수소 엔진차 '코롤라 스포트 H2 콘셉트'./도요타 제공

그렇다고 도요타가 전기차 개발을 거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도요타는 2025년까지 15개의 전기차 모델을 출시하고, 배터리 생산을 확장하기 위해 향후 10년간 135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 기술은 도요타가 가장 앞선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도요타는 “완성차 업체가 줄여야 할 것은 내연기관이 아니라 배출되는 탄소”라며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한 가지 기술에만 집중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배터리 전기차와 함께 하이브리드, 수소차 개발을 동시에 진행한다는 것이다. 일본 내에서는 미래차 시장을 전기차가 주도할 경우 그 열매의 대부분을 중국 업체가 독식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큰데, 수소 엔진차 기술을 개발하면 미래차 시대의 선택지가 다양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결정은 도요타가 그동안 축적해온 기술을 계속 활용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수소 엔진차의 경우 연료 배관과 분사 시스템을 제외하고 기존 내연기관차와 구동 원리가 비슷하다. 수소 엔진차가 미래차 시장의 일부를 점유할 수 있다면 도요타가 내연기관차 시대에 투자한 자원에 대한 성과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셈이다.

수소 충전을 준비 중인 도요타의 수소 엔진차 '코롤라 스포트 H2 콘셉트'./도요타 제공

도요타가 수소 엔진차에 투자하는 또다른 이유는 고용 유지를 위해서다. 일본 자동차제조업협회에 따르면 일본 내 자동차 산업에 550만명이 고용돼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로이터는 “대규모 정리 해고가 어려운 일본의 정치적 특성상 전기차로 완전히 전환하면서 발생하는 혼란을 수소 엔진차가 어느 정도 완충해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물론 수소 엔진차의 한계도 있다. 무엇보다 수소 엔진차는 완전한 무공해차로 분류되지 않는다. 수소가 산소와 만나 연소되면서 나오는 부산물은 물이지만, 질소산화물이 포함된 소량의 배기가스도 나온다.

수소를 다룰 때 안전성 문제나 인프라 여건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이번 레이스에서 코롤라는 경쟁 모델보다 훨씬 자주 피트에 들어왔는데, 대부분이 수소를 충전하기 위해서였다. 피트 밖 충전소에서 상당한 시간을 들여야 했기 때문에 레이싱 기록도 떨어졌다. 사카모토 수석 엔지니어는 “짧은 주행거리와 부족한 인프라 등 수소 엔진차를 위한 추가 개발이 필요하다”고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