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이른 추위에 전기차 구매를 앞둔 소비자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전기차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1회 충전 시 주행 가능 거리인데, 기온이 떨어지면 전기차의 주행거리가 더 줄어들기 때문이다. 일부 모델은 겨울이 되면 평소보다 주행거리가 100㎞ 이상 단축되는 경우도 있다.

겨울철에 전기차의 주행거리가 줄어드는 이유는 날씨가 추워지면 배터리 성능이 떨어지는 데다 내연기관차와 달리 내부 히터를 가동할 때 배터리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전기차의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업체들은 히트펌프 시스템을 탑재하고 있지만, 이를 감안해도 겨울철 전기차의 주행거리 감소폭은 상당한 수준이다.

기아의 전기차 모델 'EV6'는 겨울철 주행거리 감소폭이 경쟁모델보다 상대적으로 작았다./현대차 제공

국내에서 판매되는 전기차 주요 모델의 주행거리를 비교한 결과, 겨울철 주행거리가 큰 폭으로 줄어드는 모델은 쉐보레 ‘볼트EV’와 메르세데스-벤츠의 소형 SUV ‘EQA’였다. 우리나라 환경부 인증 기준으로 볼트EV는 상온에서 414㎞ 주행 가능하지만 저온에서는 273㎞를 달려, 주행거리 차이가 34%에 달했다. 환경부는 실험실의 온도 조건을 달리해 전기차의 주행거리를 측정하는데, 상온의 기준 온도는 25도, 저온의 기준온도는 -6.7도다. 저온의 경우 히터를 최대한으로 작동시킨 채로 주행거리를 측정한다.

5000만원대에 출시돼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는 벤츠 EQA 역시 저온에서 주행거리가 30% 넘게 줄었다. 상온에서 302㎞를 달리지만, 저온에서 주행거리는 204㎞에 불과했다. 다만 EQA 2022년형의 경우 저온에서 주행거리가 244㎞로 개선됐다. 르노 ‘조에’도 한파에 취약한 모델이다. 상온에서 309㎞인 주행거리가 저온에서는 236㎞로, 23.6% 줄어든다.

현대차(005380)·기아(000270)와 테슬라 전기차는 기온이 떨어져도 주행거리가 감소하는 수준이 10% 안팎이었다. 상온과 저온에서 주행거리 차이가 가장 적은 모델은 기아의 ‘EV6′였다. EV6 롱레인지 2WD 19인치 모델은 상온 주행거리가 483㎞인데, 저온에서도 446㎞를 달릴 수 있어 주행거리 차이가 7.7%에 불과했다.

제네시스의 첫 전용 전기차 ‘GV60′은 상온에서 470㎞를 달리는데 저온에서는 최대 416㎞를 달린다. 현대 ‘아이오닉 5′ 롱레이지 2WD 익스클루시브 모델의 상온 주행거리는 423㎞, 저온 주행거리는 345㎞였다. 테슬라 ‘모델3′와 ‘모델Y’ 롱레인지 모델은 상온에서 주행거리가 각각 495㎞, 511㎞인데, 저온에서는 438㎞, 432㎞로 줄어든다. 겨울철 짧아지는 주행거리가 10% 정도인 셈이다.

충전 중인 메르세데스-벤츠 소형 전기 SUV 'EQA'. /민서연 기자

기온이 떨어지면 배터리 효율이 줄어 주행거리가 짧아지는 전기차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완성차 업체들은 히트펌프 시스템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히트펌프 시스템은 배터리가 실내 난방으로 소모되는 정도를 최소화하기 위해 외부에서 유입되는 공기 열원과, 구동 모터, 온보드차저, 통합전력제어장치 등의 PE(Power Electronics) 모듈, 배터리, 완속 충전기 등에서 발생하는 폐열을 회수해 실내 난방에 활용한다.

히트펌프는 2012년 닛산 ‘리프’에 처음 적용됐는데, 이어 BMW ‘i3′, 폭스바겐 ‘e-골프’에 적용됐다. 현대차그룹도 ‘쏘울 EV’와 ‘아이오닉 일렉트릭’에 이 시스템을 적용해 겨울철 주행거리를 개선했다.

업계 관계자는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전환 속도를 높이는 과정에서 히트펌프 시스템의 기술력을 높이는 동시에 온도에 민감한 리튬이온 대신 전고체 배터리를 상용화하기 위한 연구개발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