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성장하는 중국 전기차 시장에 ‘전력난’이라는 복병이 나타났다. 중국 지방정부가 일방적인 단전 조치를 내릴 만큼 심각한 전력 부족 사태로 중국 일부 지역의 전기차 충전소가 운영을 멈추면서 전기차 구매를 고려하던 소비자들이 구매 결정을 미루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지난달 중국 북동부 지린성과 남부 광둥성 등에서 발생한 정전 사태로 일부 전기차 충전소가 출퇴근 시간 운영을 중단하자 전기차 운전자들이 차를 충전하지 못해 도로에 나가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중국 랴오닝성 선양의 한 화력발전소에서 트럭이 석탄을 운송하고 있다. 중국 동북 지방에서는 최근 석탄 부족으로 공장 전력을 중단하는 등 최악의 전력난이 발생했다./연합뉴스

중국은 최근 최악의 전력난을 겪고 있다. 세계 발전용 석탄 가격이 급등하자 화력발전소 상당수가 가동을 멈췄고, 강수량이 적어 수력 발전도 원활하지 못한 탓이다. 이에 따라 지난달 중국 당국은 본토 31개 성(省), 직할시, 자치구 가운데 10곳 이상에서 전력 부족 현상이 발생해 공장 수천 곳에 전기 공급을 차단했다. 인도에도 석탄 재고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 중국과 비슷한 전력난이 곧 닥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과 유럽의 전력 가격도 급등세다.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에너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기후 악당’으로 몰린 화석연료에 대한 투자가 위축되면서 전통적인 전력원 가격이 오르는 것이다. 우리 정부와 한국전력(015760)도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전력 발전 단가가 높아지자, 지난달 8년 만에 전기요금을 인상했다.

세계 각국이 탄소중립을 위해 급격한 에너지 전환에 나서면서 전기차로의 전환을 서두르는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의 고민이 커지게 됐다. 전력난이 발생한 중국에서는 전기차 구매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고, 전력을 사용하는 비용이 커진 다른 국가에서도 전기차 구매 유인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자동차 업체 관계자는 “보조금을 받아도 내연기관차보다 조금 더 비싼 전기차를 사는 이유는 주유 가격보다 전력 충전비가 저렴하기 때문인데, 충전비 부담이 커지면 소비자들은 전기차 선택을 미루게 될 것”이라며 “각국 정부의 전기차 보급 목표가 지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상하이의 테슬라 공장에서 전기차가 출고되는 모습./연합뉴스

전기차 시대로의 원활한 전환을 위해서는 전력 생산망을 더 확대해야 한다는 진단도 나온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이달 한 콘퍼런스에서 “전기차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미국 전력 생산량이 지금의 두 배로 늘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 많은 변전소와 송전 네트워크를 건설해 전력 생산을 늘려야 전력망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서 전기차 시대로 진입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스마트그리드 기술을 활용해 전력난을 극복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중국 상하이 컨설팅 업체 솔레이의 에릭 한 수석매니저는 “전기차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충전 네트워크에 대한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며 “스마트그리드 기술을 활용해 재생 에너지를 전력망으로 변환·통합하고, 공급 불안을 완화하면 전기차 산업의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