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성장하는 전기차 시장에 뛰어든 글로벌 스타트업들이 테슬라가 겪었던 '생산 지옥(Production hell)'을 피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 중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언급한 '생산 지옥'은 생산 차질이 빚어져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경영이 악화되는 상황을 말한다. 작은 규모로 시작한 스타트업의 생산 능력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기 직전 종종 발생하는 위기 양상인데, 이를 극복하려면 '혹한기'를 지날 충분한 자금을 확보하고 있거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생산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그동안 완성차 업체들은 수십억달러를 투자해 연간 수십만대의 대규모 생산 체계를 구축하는 전통적인 생산 방식을 채택해 왔다. 이런 생산 방식은 설비투자·인건비 등 고정비용 지출이 큰 자동차 업계에서 가장 효율적이었다. 그런데 몸집이 작은 스타트업이 전기차 시장에 속속 진출하면서 기존 차 생산 방식에도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들 스타트업은 연간 생산량이 1만대에 불과한 '마이크로팩토리'를 건설하는가 하면 위탁생산을 활용해 생산비를 절감하고 체계적으로 생산 계획을 설정해 테슬라가 겪은 '생산 지옥'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연간 생산량 1만대… 스타트업의 소규모 생산 공정
전기 픽업트럭과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를 개발하고 있는 리비안은 본격적인 제품 판매를 시작하기도 전에 미국 내 두 번째 공장 부지를 모색하고 있다. 일리노이주 노멀 지역에 있는 현재 조립시설만으로는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리비안은 아마존·포드·블랙록 등 대기업으로부터 100억달러(약 12조원)가 넘는 투자금을 확보해,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공격적으로 생산 능력을 확장할 계획이다.
세계 전기차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글로벌 유동성도 넘쳐나고 있지만 리비안처럼 충분한 자금을 확보한 스타트업은 많지 않다. 자동차 산업은 대규모 생산 체계를 갖춰 단위 생산비용을 떨어뜨릴 때까지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전기차 스타트업이 전통적인 생산 방식을 탈피하고 나선 이유도 이 때문이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글로벌전략담당 부사장을 지낸 마이크 아벨슨 어라이벌 북미 대표는 "신생기업에 큰 장벽으로 작용하는 전통적인 생산 방식으로 일을 하려면 엄청난 자금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 전기차 스타트업 어라이벌도 지난 3월 공모를 통해 6억6000만달러를 모금해 미국에 두 개 공장을 짓고 있지만, 기존 생산 방식만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어라이벌은 영국 비스터에 고가의 장비 없이 전기밴과 전기버스를 생산할 수 있는 '마이크로팩토리'를 건설 중이다. 공장 건설 비용은 5000만달러 이하로, 연간 생산 대수는 1만대에 불과하다. 주요 소비지 인근에 공장을 세워 물류 비용을 줄이고, 도색이 완료된 경량 플라스틱을 활용해 도장 설비도 없다. 또 이 공장에는 2~3개의 임무를 수행하도록 프로그래밍 된 70대의 로봇이 생산에 참여한다.
배송용 전기 밴을 개발 중인 미국 스타트업 카누 역시 마이크로팩토리를 통한 생산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다만 토니 아퀼라 카누 CEO는 미국 오클라호마에 마이크로팩토리의 허브 역할을 하는 '메가 마이크로팩토리'를 건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비용 절감을 위해 아웃소싱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추세도 포착되고 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기반을 둔 REE오토모티브는 대규모 전기 플랫폼을 구축하기 위해 미국 자동차 부품사 아메리칸액슬, 일본 미쓰비시와 계약을 체결했다. 피스커는 캐나다 마그나와 협력해 전기차를 생산할 계획이고, 했고, 대만의 폭스콘과도 유사한 위탁 생산 계약을 체결했다.
◇ 테슬라도 과거 '생산지옥'에 빠져 휘청
전기차 스타트업들이 전통적인 완성차 업체와 다른 생산 전략을 채택한 것은 생존을 위한 자구책이다. 자동차 산업의 기본인 대규모 양산 체계를 갖추자니 자금이 충분하지 않고 테슬라마저 위기에 빠뜨렸던 '생산지옥'을 경험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전기차 '모델S'와 '모델X'를 선보이며 승승장구하던 테슬라가 위기에 빠진 것은 보급형 전기차 '모델3'를 출시한 이후부터다. 모델3는 2016년 테슬라가 처음 출시 계획을 발표한 지 이틀 만에 예약 판매대수가 25만대를 돌파하며 전세계적인 기대를 모았다. 업계에서는 테슬라가 모델3를 원활하게 생산하면 글로벌 자동차 업체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2017~2018년, 모델3의 생산은 극심한 차질을 빚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직접 "모델3로 우리는 '생산지옥'에 깊이 빠졌다"라고 했을 정도다.
당시 테슬라는 모델3 생산을 늘리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자동화·배터리 문제 등으로 '생산 병목현상'이 끊임없이 발생했고 대규모 적자를 떠안으면서 투자금을 소진해야 했다. 당시 테슬라는 생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캘리포니아 버몬트 공장 인근에 거대한 텐트를 세워 단 2주 만에 새로운 생산 라인을 구축하기도 했다.
이후 테슬라는 중국 상하이에 대규모 전기차 공장을 세우는 등 생산을 확대하면서 위기를 극복했지만, 위험은 여전히 도사리고 있다. 머스크는 지난 7월 26일 상반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놀라운 것은 테슬라가 아직 양산에 이르지 못해 파산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