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독일 폭스바겐은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글로벌 환경 규제가 강화되고 있어 화석연료로 달리는 내연기관차 판매 비중을 줄이지 않으면 차를 팔아 번 돈을 고스란히 벌금으로 내야 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연기관차를 퇴출하고 배터리로 달리는 전기차로 완전히 전환하는 것이 정답일까. 가장 높은 수준의 환경 규제를 적용하고 있는 유럽의 일부 국가에서조차 100% 전기차 전환이 해답은 아니라는 견해와 함께 대안을 찾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이 과정에서 신종 연료 ‘이퓨얼(e-fuel)’이 주목받고 있다. 전기 기반 연료(Electricity-based fuel)의 약자인 이퓨얼은 무색무취에 가까운 액체이지만, 화학적 구성(탄화수소)이 석유와 같아 가솔린·디젤차는 물론, 제트 엔진 연료로도 바로 쓸 수 있다. 이퓨얼은 물을 전기 분해해 얻은 수소를 이산화탄소나 질소 등과 결합해 만드는데, 수소는 태양광이나 풍·수력 같은 재생에너지를 이용해 얻고, 이산화탄소와 질소는 대기 중에서 포집해 쓰기 때문에 온실가스 저감 효과가 크다.

내연기관차의 연료 주입구./포르셰 제공

환경 규제에 대응해야 하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전기차 전환과 함께 이퓨얼 개발에 나서고 있다. 독일 스포츠카 제조사 포르셰는 지난해 2400만달러(약 272억원)를 투자해 칠레에 이퓨얼 공장을 세우고 있다. 포르셰는 내년부터 풍력 발전을 이용해 수소를 얻어 이퓨얼(e-메탄올)을 생산할 계획이다.

포르셰와 함께 폭스바겐그룹 안에 있는 독일 아우디 역시 2017년 이퓨얼 연구소를 설립했다. 아우디는 2018년 3월 상당한 양의 이퓨얼을 생산했는데, 아우디가 개발한 e-가솔린은 유황과 벤젠 성분이 없어 배기가스에 오염물질이 적은 것이 특징이다. 또 옥탄가가 높아 엔진 효율도 높다.

전기차 전환이 최종 목적지가 아닐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일본 완성차 업체들도 이퓨얼 연구에 적극적이다. 특히 순수 전기차보다 이퓨얼을 연료로 하는 하이브리드차가 전체 탄소 배출량이 더 적다고 주장하는 도요타는 닛산, 혼다와 함께 본격적인 이퓨얼 연구에 나섰다.

전기차 전환으로 큰 소비 시장을 잃게 된 정유사들도 이퓨얼 개발에 나서고 있다. 미국 엑손모빌은 포르셰와 이퓨얼 개발에 협력하고 있고, 유럽 쉘사는 항공기용 이퓨얼 생산을 시작했다. 스페인 최대 에너지 기업 렙솔은 6000만유로(약 811억원)를 들여 북부 항구도시 빌바오에 이퓨얼 공장을 짓고 있다. 미국 자동차 부품사 테네코는 산학 협력을 통해 이퓨얼의 상업적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퓨얼 개발을 위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SK에너지, 현대오일뱅크, GS칼텍스, S-OIL 등 국내 정유사와 함께 이퓨얼 개발에 나서기로 했다.

이퓨얼을 생산하는 아우디의 파일럿 설비./아우디 제공

전기차 개발에 늦은 일본차 업체뿐 아니라 전동화 전환에 적극적인 포르셰, 아우디, 현대차까지 이퓨얼 개발에 뛰어든 것은 이들이 전기차 개발에만 집중해서는 리스크가 크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전기차 개발과 관련 인프라 구축 과정에서 상당한 비용이 드는 것은 물론 주행거리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게다가 유럽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전기차 배터리를 충전하기 위한 전력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양의 탄소가 발생힌다. 환경 규제가 단순히 자동차에서 배출되는 오염물질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에너지 생산에서부터 차량 구동에 이르는 전 과정, 이른바 ‘유정에서 바퀴까지(well to wheel)’로 확대된다면 전기차 전환만으로 환경 규제를 피해가기 어렵다는 의미다.

다만 이퓨얼이 상용화되려면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가장 큰 문제는 생산비가 높아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 따르면 현재 이퓨얼의 리터당 생산비는 5000원 정도로, 세금을 제외하면 휘발유 가격의 10배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