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6월이 되면 프랑스 중부의 소도시 르망은 축제 열기로 달아오른다. 세계적인 자동차 브랜드들이 참여하는 내구 레이스 ‘르망24’를 관람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수십만명이 몰려들기 때문이다.

경주트랙에서 0.001초를 다투는 초고속 레이스 포뮬러 원(F1)과 달리 르망 24는 세 명의 드라이버가 24시간 동안 13.629㎞ 길이의 서킷을 얼마나 많이 도느냐에 따라 승부가 결정되는 모터스포츠다. 자동차의 주행 성능과 내구성은 물론 드라이버의 체력과 집중력, 팀워크, 미케닉의 빠른 조치 등 무엇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어 수많은 글로벌 레이스 중에서 가장 극한의 종합 모터스포츠로 꼽힌다.

르망24 경주가 펼쳐지는 트랙 모습. 2018년 트랙에 관람객이 가득 차 있다./르망24 제공

르망24는 내구 레이스의 기원이 되는 오랜 자동차 경주로, 1923년 5월 26일 처음 개최됐다. 첫 경기는 5월에 열렸지만, 이듬해부터는 낮이 가장 긴 매년 6월에 열리고 있다. 경기일은 매년 24번째 토요일로, 오후 3시에 시작해 일요일 오후 3시에 끝난다. 다만 작년에는 코로나 사태로 일정에 차질이 빚어지며 9월에 열렸고, 올해도 8월로 연기됐다.

세계 최고의 내구 레이스로 불리는 '르망24'에서 참가 경주차들이 경쟁을 펼치는 모습./르망24 제공

◇ 하루에 서울~부산 7번 왕복하는 극한 레이스

르망 24의 경기 방식은 간단하다. 24시간 동안 서킷을 가장 많이 돈 팀이 우승을 차지한다. 지금까지 최고 기록은 2010년 아우디팀이 ‘R15 TDI’ 경주차로 서킷 397랩을 달성한 것이다. 전체 거리로 치면 5410㎞, 하루에 서울에서 부산(약 400km)을 7번 정도 왕복한 거리다.

드라이버가 혹사해 안전사고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세 명의 운전자가 차 한 대를 번갈아 운전하는데, 한 사람이 4시간 이상 계속 운전할 수 없고 드라이버 한 명의 누적 주행 시간이 14시간을 넘겨서도 안 된다.

승부를 가르는 방식은 간단하지만 경기 내용은 절대 녹록지 않다. 레이스가 펼쳐지는 ‘라 사르트 서킷’은 레이스 트랙과 일반 도로가 혼재돼 있는데, 평소에는 일반차가 다니는 도로의 경우 노면이 고르지 않을뿐더러 S자 모양의 커브가 연속해서 이어지거나 90도로 꺾어지는 구간이 있어 드라이버의 엄청난 집중력이 요구된다. 24시간 동안 드라이버들이 내는 속도는 평균 200㎞/h를 웃도는데, 밤이나 비가 올 땐 시야 확보도 쉽지 않다.

르망24에 참가한 팀은 24시간을 쉬지 않고 달려야 한다. 해가 지면 드라이버의 더 높은 집중력이 요구된다./르망24 제공

50~60대의 차량이 일제히 출발하고 수백 바퀴를 돌다 보면 앞뒤 차가 같은 클래스에서 경쟁하는 차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앞뒤 차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싸우면서 기록을 내야 한다는 의미다. 24시간 경기 진행 과정에서 경주차는 드라이버를 바꾸거나 타이어 교체, 급유, 정비를 위해 몇 번이나 멈춰선다.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는 팀워크와 고장이 발생했을 때 이를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능력 역시 기록에 큰 영향을 미친다.

경기는 레이스에 참가하기 위해 특별 제작한 모델로 참여하는 LMP과 양산 슈퍼카를 개조해 출전하는 GTE로 나뉜다. LMP은 다시 1, 2클래스로 나뉘고, GTE 역시 프로(PRO)와 아마추어(AM) 리그로 구분된다. 경기 최고 기록은 고성능 차로 참가하는 최상위 클래스 LMP1에서 나온다. LMP1에 참여하는 팀의 드라이버는 24시간 동안 시속 300㎞가 넘는 속도로 달린다. 올해는 경기 방식이 개편돼 LMP1을 대체하는 최상위 클래스 LMH(Le mans Hypercar)가 신설된다.

◇ 최다 우승은 포르셰… 2000년 이후엔 아우디가 두각

르망24에서 가장 많이 우승컵을 거머쥔 브랜드는 독일 포르셰다. 지금까지 총 19번 우승했다. 포르셰는 1951년 브랜드 첫 양산차인 ’356′이 생산된 지 3개월 만에 레이스카 ’356SL’로 르망24에 출전했고, 1970년 전설적인 레이스카 ’917′로 우승했다. 포르셰는 1998년 ’911 GT1′의 우승 이후 르망24시 최상위 클래스에 참가하지 않았는데, 2014년 ’919 하이브리드'로 복귀해 2015~2017년 3년 연속 우승했다. 특히 19번째 우승한 2017년에는 자동차 점검 때문에 피트(pit·드라이버 교체, 정비, 주유를 위해 정차하는 곳)에 한 시간이나 머무르고도 도요타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포르셰의 우승 기록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2000년대 들어 르망24를 지배한 브랜드는 포르셰와 같은 폭스바겐그룹에 있는 아우디팀이다. 특히 아우디는 2000년부터 2010년까지 11회의 경주에서 9회 승리했다.

르망24 경기 상황실 모습./르망24 제공

지금까지 나온 가장 성공적인 내구 레이스용 경주차인 ‘R8’은 6년간 르망24에서 5번이나 우승했다. 2003년 벤틀리에 우승을 내줬지만, 이때 승리한 벤틀리 ‘스피드 8’의 엔진은 R8을 위해 아우디가 개발한 가솔린 엔진이었다.

이탈리아 페라리도 르망24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알파 로메오 소속 드라이버였던 엔초 페라리가 창립한 페라리는 최고의 엔지니어와 드라이버들의 치열한 노력 끝에 르망24에서 9회 우승했다. 특히 페라리는 르망24에서 기록을 높이기 위해 엔지니어를 두 팀으로 나눠 경쟁 프로젝트를 가동하는가 하면 경주에서 패한 후 회사 이사회실에서 원인 분석을 위한 사후 회의를 갖기도 했다. 이 회의의 별명은 ‘실수의 박물관’이었다.

드라이버를 교체하거나 정비, 급유를 위해 경주 차량이 정치하는 피트 모습./르망24 제공

르망24에서 페라리를 꺾기 위해 상당한 자금을 투자한 결과 우승한 업체가 바로 미국 포드사다. 1960년대 포드는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 페라리 인수를 시도했는데, 막판에 거래가 중단됐다. 절치부심하던 포드는 ‘GT40’ 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GT40은 1966~1969년 르망24에서 우승하며 페라리를 완패시켰다. 이때 포드와 페라리의 경쟁은 영화 ‘포드 v 페라리’(2019년)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일본 도요타도 르망24에서 상당한 성적을 거뒀다. 특히 도요타는 르망24에 2012년부터 하이브리드 규정이 도입된 이후 처음 하이브리드차로 우승을 거머쥐었다. 하이브리드차의 뛰어난 주행 성능은 물론 이전보다 30% 적은 연료로 레이스를 달려 효율성도 입증했다. 지난 2018년 ‘TS050 하이브리드’로 경기에 출전한 도요타는 388랩을 기록하며 우승했고,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우승 기록을 썼다.

르망24에 출전할 푸조의 하이퍼카 '9X8'./PSA 제공

◇ 페라리·아우디·포르셰, 르망24 내구 레이스 속속 복귀

다만 최근 몇 년 동안에는 포르셰와 아우디 등 우승 후보 브랜드들이 최상위 클래스 LMP1에 불참하면서 흥행이 다소 부진했다. 막대한 개발 비용 부담과 까다로운 규정 등으로 도요타를 제외한 나머지 제조사들이 대회에서 철수하며 대회에 대한 관심도 사그라들었다.

그런데 국제자동차연맹(FIA)이 다양한 제조사들이 대회에 참여하도록 하이퍼카 클래스를 신설하는 등 대회 규정을 개편하면서 르망24의 명성이 부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1973년을 마지막으로 F1에만 집중해온 페라리는 지난 2월 2023 시즌부터 르망24 최상위 클래스 LMH에 참여한다고 발표했다. 40년 만에 내구 레이스에 복귀하는 것이다. 페라리는 이미 LMH 클래스 참가를 확정한 도요타와 푸조, 애스턴 마틴과 경쟁하게 된다.

전기차 ‘e-트론’을 앞세워 전기차 레이스인 ‘포뮬러 E’에 집중해온 아우디 역시 르망24 복귀를 선언했다. 이어 포르셰도 르망24에 참전한다고 밝혔다. 아우디와 포르셰는 새로운 클래스 LMDh(르망 데이토나)에 참여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