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의 스포츠유틸리티차(SUV) X5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를 소유한 직장인 김모씨는 최근 황당한 경험을 했다. 김씨와 같은 아파트에 거주하는 한 입주민이 관리실을 통해 아파트 내 전기차 충전 구역에 주차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이 입주민은 PHEV는 엔진도 함께 사용한다는 점을 언급하며 가뜩이나 모자란 전기차 충전 구역은 가급적 다른 입주민을 위해 비워달라고 했다. 김씨는 "전기차 충전기가 설치된 주차공간이 부족한 상황은 알고 있다"면서도 "배터리 동력도 함께 사용하려고 비싼 PHEV 모델을 구매한 것인데 이런 얘기를 들으니 기가 막힌다"라고 말했다.

전국 곳곳의 아파트가 전기차 충전 대란을 겪고 있다. 정부의 정책 지원에 힘입어 전기차 보급은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데 인프라 구축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부의 인프라 지원이 순수 전기차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상당한 양이 판매되고 있는 PHEV에 대한 지원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를 들어 정부는 공동주택(아파트)에 최대 5대까지 전기차 충전기 설치를 무상 지원하는데, 해당 아파트 단지에 전기차가 10대를 넘으면 2대당 1기를 추가로 지원한다. 하지만 해당 지원에서 충전기를 함께 이용하는 PHEV는 포함되지 않는다. 전기차 열풍에 PHEV 판매도 덩달아 증가하고 있지만 인프라 구축 지원 과정에서 이를 고려하지 않아 충전기 부족 현상이 만성화되고 있는 셈이다.

그래픽=박길우

현행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르면 전기차 충전구역에는 순수 전기차뿐 아니라 외부 전기 공급원으로부터 충전되는 전기에너지로 구동 가능한 하이브리드차, 즉 PHEV까지 주차를 할 수 있다. 이 두 차종을 제외한 일반차가 주차하거나 물건을 쌓아두면 벌금 10만원이 부과된다. 전기차 충전구역에 PHEV를 주차하도록 허용하면서 인프라 지원 대상에서는 배제하는 정책 엇박자가 발생한 것이다.

정부가 순수 전기차 보급을 확대하겠다며 PHEV를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고 있지만 PHEV 판매는 수입차를 중심으로 계속 늘어나고 있다. 전기차를 구매하기 부담스러운 소비자들이 하이브리드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PHEV는 전기차의 최대 단점인 짧은 주행거리를 내연기관 엔진으로 보완하고, 충전이 필요한 배터리를 통해 연비를 높인 모델이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와 카이즈유에 따르면 지난해 PHEV 수입차 모델은 총 1만467대가 판매돼 순수 전기차(1만5186대) 못지않은 판매고를 올렸다. 올해는 전기차보다 PHEV 판매가 오히려 많아질 가능성도 있다. 지난 1~4월 판매 실적을 보면 PHEV 판매량이 전기차를 넘어섰다. 이 기간 수입차 PHEV 판매량은 7098대로, 전기차 판매량(4640대)을 크게 웃돌았다. 지난달 PHEV를 구매한 직장인 한모씨는 "전기차는 당장 충전이 안 되면 멈춰서지만 PHEV는 엔진이라는 보조 동력을 갖고 있는 데다 연비도 좋아 만족도가 아주 높다"라고 말했다.

전기차 충전구역에서 충전 중인 전기차./연합뉴스

주요 선진국은 전동화 전환 과정에서 PHEV를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 문제에 대응해 전기차 보급을 확대하고 있지만, 짧은 주행거리와 인프라 부족 등 순수 전기차만을 고집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PHEV를 포함한 하이브리드차를 완전한 전동화로 향하는 디딤돌로 본 것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세계 PHEV 판매량은 2019년 52만3844대에서 지난해 90만9519대로 73.6% 증가했다. 주요국 정부가 PHEV에 대한 보조금 정책을 유지한 덕분이다. 독일은 순수 전기차와 함께 PHEV의 지원금을 2025년까지 유지하기로 했고, 프랑스는 2019년 폐지했던 PHEV 보조금을 다시 지급하기 시작했다. 미국과 중국도 PHEV를 포함한 친환경차 보조금 제도를 정비 중이다.

해외 주요국이 PHEV에 대한 지원을 늘리자 국산차 업체들도 해외 PHEV 시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기아(000270)는 수출 시장을 겨냥해 국내에선 판매 실적이 연간 백여대 수준인 니로 PHEV 생산을 유지하고 있고, 지난해에는 유럽에서 쏘렌토 PHEV 모델을 출시하기도 했다. 현대차는 미국과 유럽에서 투싼과 싼타페 PHEV 모델을 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