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전기차 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전기차 보급을 확대하기 위해 마련한 친환경차 보조금 정책은 전기차 보급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상반기가 채 지나기도 전에 지자체 보조금이 절반 이상 소진되면서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전기차 구매가 뚝 떨어지는 이른바 '보조금 절벽'이 올해도 반복될 공산이 크다. 친환경차 보급을 확대한다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고, 아울러 국내 기업이 전기차 분야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려면 어떤 방향으로 정책이 수정돼야 하는지 짚어본다. [편집자주]

지난해 국내에서 약 15만대가 팔렸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차량은 올해 1분기에 단 한 대도 팔리지 않았다. 환경부가 PHEV에 대한 보조금 혜택을 중단한 영향이다. 정부는 그동안 최대 300대까지 500만원씩 PHEV에 보조금을 지급했으나 전기차 보급을 늘리겠다는 이유로 중단했다. 하이브리드를 포함한 친환경 차량의 가격은 내연기관차보다 수백만원 넘게 비싸 차량 구매 시 보조금의 역할이 크다.

현 보조금 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는 선착순 수급제도가 꼽힌다. 국내에서 전기차 보조금을 받으려면 연초 보조금 공고가 난 후 소비자가 제조사에서 차량을 사전 예약한 뒤 출고차량이 배정되면 신청하는 형태다. 차량 출고를 대기하던 중에 보조금이 소진되면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은 여러 브랜드 차량에 사전 예약을 걸어둔 뒤 빨리 출고되는 차량을 구매해 보조금을 받는 눈치싸움까지 벌이고 있다.

그래픽=정다운

정만기 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은 "공정성을 위해 선착순이라는 방식을 도입한 것은 이해가 가지만, 연초에 전부 몰아주는 것보다는 일정 기간별로 보조금 총량을 나눠 집행하는 편이 나아보인다"며 "분기나 월별로 보조금을 나눠서 집행하면 첫번째에 기회를 놓친 사람도 두번째 세번째 기회를 통해 보조금을 노려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제조사 입장에서도, 수입차의 경우 국내에 출시할 때 예약이 많이 들어오고 배로 빨리 들여올 수 있어 국내 제작사들이 피해를 보는 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지방자치단체별로 상이한 규정도 소비자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보조금을 지급받기 위한 자격 및 의무 거주 규정이 지자체별로 다르다보니 혼란이 가중된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어떤 지자체는 공고일 전날까지만 시 내에 거주한 것이 확인되면 전기차 보조금 지급대상이 되지만, 다른 지자체의 경우 최소 1개월, 3개월 전까지 전입신고가 된 경우에만 지급대상이 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지자체별로 보조금 관련 지급 기준이 조금씩 다른데, 보조금을 받은 뒤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는 경우에도 의무운행 기간이 수 개월부터 2년까지 제각각"이라며 "이런 부분에서도 소비자들의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 중앙정부가 나서서 조율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메르세데스-벤츠 EQS.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지급 대상 차종도 보완해야 할 부분으로 꼽힌다. 정부는 같은 친환경차로 분류되는 하이브리드 차량에 대한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수년째 계속 줄여오고 있다. 하이브리드 차량은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폭스바겐이 친환경차 생산계획을 밝히며 2029년까지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모델을 60개 출시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볼보가 2025년까지 글로벌 매출의 절반을 전기차, 나머지 절반을 하이브리드로 구성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이같은 이유다.

조철 한국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리 사회가 하이브리드 차량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하이브리드 차량은 전기차로 완전히 전환되기 전에 완충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며 "특히 탄소 저감효과가 큰 PHEV에 대해서는 일정금액의 보조금, 세제 혜택 등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충전 사업자에 대한 보조금 지급도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충전사업자에 대한 보조금도 계속 요구되는 부분인데, 충전기를 설치할 때만 보조금이 지급되면서 활용도가 떨어지는 지역에 설치하거나 설치 후 관리가 안돼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있다"며 "설치할 때만 지급하기보다는 활용도에 따라 보조금을 지원하는 편이 나아 보인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많은 사람이 쓸 수록 보조금을 더 지급하는 정책을 도입하면 사업자들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 충전기를 설치하려 할 것이고, 이용률을 높이기 위해 비용을 낮추는 등 시장경제의 원리에 따라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