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전기차 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전기차 보급을 확대하기 위해 마련한 친환경차 보조금 정책은 전기차 보급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상반기가 채 지나기도 전에 지자체 보조금이 절반 이상 소진되면서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전기차 구매가 뚝 떨어지는 이른바 '보조금 절벽'이 올해도 반복될 공산이 크다. 친환경차 보급을 확대한다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고, 아울러 국내 기업이 전기차 분야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려면 어떤 방향으로 정책이 수정돼야 하는지 짚어본다. [편집자주]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다양한 전기차 모델을 잇달아 선보이고 있어 2021년은 전기차 전환의 원년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덕분에 전기차 수요도 빠르게 증가했다. 현대차(005380)가 출시한 아이오닉 5는 사전 계약 첫 날에만 계약 건수가 2만4000대에 육박해 연간 판매 목표를 하루 만에 달성했다. 기아(000270)가 출시할 예정인 전기차 EV6 역시 사전 예약 첫 날 2만1016대를 기록했다.

내연기관차보다 훨씬 비싼 전기차가 돌풍을 일으키는 이유는 정부가 지원하는 보조금 덕분이다. 하지만 상반기가 지나기도 전에 지방자치단체 지원금이 바닥을 보이는 등 반쪽짜리 보조금 정책 때문에 전기차를 구매하려는 소비자가 혼란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정부가 전기차·수소차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목적은 구매자의 가격 부담을 낮추고 완성차 업체에 간접적인 인센티브를 부여해 친환경차 보급을 늘리기 위한 것인데, 설익은 보조금 정책으로 소비자들의 눈치게임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그래픽=박길우

환경부에 따르면 올해 전기차 보조금은 절반 가까이 소진됐다.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국고 보조금 최고 800만원과 지자체 지원금을 합하면 소비자들은 전기차를 구매할 때 1000만원 이상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올해 환경부의 전기 승용차 보급목표는 7만5000대로, 국비 예산은 100% 확보됐다. 문제는 지자체 지원금이다. 지자체가 올해 전기 승용차에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한 물량은 4만5814대로, 국비와 지방비를 함께 지원받을 수 있는 차량이 환경부 보급 목표의 60%에 불과하다.

각 지자체마다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이미 지자체 지원금은 바닥을 보이고 있다. 환경부의 저공해 통합누리집에 따르면 서울시의 경우 올해 총 5067대의 전기승용차에 국고 보조금 800만원과 지자체 지원금 최대 400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법인이나 기관에 2027대, 우선순위(배출가스 5등급 차량 폐차 후 대체 구매자이거나 취약계층, 다자녀, 생애 최초 차량 구매자 등)에 506대, 일반 개인에 2534대다.

서울시는 접수 순서에 따라 심사를 마쳐 보조금을 지급할 계획인데, 법인기관의 경우 이미 2907대가 접수돼 신청이 마감된 상태고, 일반 물량 역시 1986대가 접수돼 500여대 정도의 예산 정도가 남았다. 우선순위의 경우 220대가 접수됐다.

상반기가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보조금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은 수소차도 마찬가지다. 현대차가 올해 수소차 넥쏘의 연식변경 모델을 내놓은 이후 수소차 인기가 높아지면서 상당 수 지역 수소차 보조금이 바닥을 보이고 있다. 서울시는 올해 일반 수소차 구매 300대에 보조금을 지원할 예정이었는데, 이미 309대가 접수됐다. 지금 서울시에서 수소차를 구매하더라도 추가경정예산이 편성돼야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형편이다.

최근 넥쏘를 구매한 직장인 김씨는 "원래는 휴가철인 여름에 차를 바꿀 생각이었는데, 그때가 되면 보조금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영업사원의 말에 바로 계약을 진행했다"며 "시기를 놓쳤다면 보조금을 기다리기보다 아마 내연기관차를 구매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테슬라 모델S./테슬라 제공

한 해 절반이 지나기도 전에 고갈되는 보조금 때문에 세금으로 해외 기업의 배만 불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기차 구매를 고민하던 소비자들이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으로 출고가 지연되는 아이오닉 5나, 하반기에나 출시될 EV6를 기다리기보다 테슬라 전기차 구매로 방향을 트는 사례가 속속 나온다. 서울 마포에 살고 있는 직장인 이씨는 "아이오닉 5를 구매할 생각이었지만 생산이 지연된다는 뉴스가 계속 나와 테슬라 모델3를 구매했다"며 "보조금이 떨어질까봐 테슬라 전기차를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꽤 많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올해 테슬라의 판매대수는 1~2월 각각 18대, 20대에 그쳤지만 보조금 지급이 시작된 3월에는 3194대로 급증했다. 올해 1~3월 국내에서 판매된 전기승용차는 6220대였는데, 이중 3231대가 테슬라였다.

정부가 올해부터 6000만원 이상의 고가 차량에 대해서는 지원금을 절반으로 줄였지만, 가장 많이 팔리는 모델3 가격은 5000만원대이고 테슬라가 올해 출시한 모델Y의 최저 가격을 5999만원으로 책정하면서 상당수 물량이 보조금을 적용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보조금 기준이 확정된 이후 대기하던 소비자들이 한꺼번에 몰린 결과다. 테슬라는 지난해에도 1만1829대가 판매돼 보조금 싹쓸이 논란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