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안 볼머 폭스바겐 승용차 생산 책임자는 최근 독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더이상 볼륨 측면에서 세계 최대의 자동차 제조업체가 되려는 목표를 갖고 있지 않다"라고 말했다. 폭스바겐은 수년 동안 덩치를 키우는 목표를 추구했고, 2016년 일본 도요타를 제치고 세계 최대 자동차 업체가 됐다. 지난해 일본 도요타가 다시 세계 1위 업체 지위를 회복하면서 두 회사가 세계 1위 자리를 놓고 경쟁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폭스바겐은 더 이상 판매대수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의 경영 전략이 바뀌고 있다. 핵심은 글로벌 판매 실적을 늘리는 기존 전략을 폐기하는 대신 수익성을 높이는 데 집중해 최대한 많은 투자자금을 확보하는 것이다. 앞서 폭스바겐은 엑셀러레이트라는 전략을 발표하면서 차량 포트폴리오를 단순화하고 소프트웨어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 르노그룹도 판매량 확대 대신 수익성을 높이는 데 집중하겠다는 장기전략 '르놀루션'을 발표했다.
내실을 다지는 방향으로 자동차 업계의 전략이 전환되는 상황은 전기차, 자율주행차 등 미래차의 등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전기차, 자율주행차 등 미래차 시대를 앞두고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은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야 하는 상황이다. 아직은 내연기관차 중심인 포트폴리오가 유지되고 있는데 이를 기반으로 시장 점유율을 계속 늘리는 것보다는 현금을 확보해 미래 사업에 투자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나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 깔린 것이다.
영국 컨설팅업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최근 보고서에서 IT기술의 발달, 구조적인 저성장, 환경오염 등의 요인에 따라 앞으로 자동차 산업은 커넥티드, 자율주행, 차량공유, 전기차라는 네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패러다임이 변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통신으로 차량을 연결하는 커넥티드나 반도체와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구현되는 자율주행, 차량공유뿐 아니라 기존 내연기관 엔진을 없애고 배터리에 의해 구동되는 전기차 모두 새로운 투자가 필요한 영역이다.
세계 자동차 판매에서 전통적으로 선두를 지켜온 미국 제너럴모터스(GM)는 일찌감치 수익성 개선에 초점을 맞췄다. 2014년까지만 해도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많은 차를 판매했지만, 메리 바라 회장이 취임한 이후 수익성을 높이기 위한 생산기지 재편을 단행했다. 판매량 1위 지위는 폭스바겐, 도요타에 넘겨줬지만 수익성이 크게 개선됐고, 높아진 이익을 전기차와 자율주행 등 신기술에 적극적으로 투자했다.
미래차 시장으로의 전환이 가속화될 수록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는 대신 수익성에 집중하는 자동차 업체들이 늘어날 전망이다. 그동안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데 집중해왔던 현대차(005380)의 경영 전략도 수익성 개선 쪽으로 향하는 분위기다. 현대차는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가 국내에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정착하자 미국 사업을 확대하고 중국, 유럽 시장으로 진출했다. 스포츠유틸리티차(SUV) 등 고부가가치 차종의 생산 비중도 늘리고 있다.
세계 자동차 시장을 강타한 '반도체 쇼크'가 수익성을 강조하는 업계의 전략 변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올해 들어 상당수 자동차 업체들은 차량용 반도체를 충분히 공급받지 못해 결국 잇단 감산에 나섰는데, 이들의 수익성이 오히려 개선되는 역설적인 현상이 발생했다. 자동차 업체들이 SUV, 픽업트럭, 고급차 등 고수익 차종 생산에 집중하면서 체질이 개선된 것이다.
올해 초부터 잇단 감산에 나선 GM의 올해 1분기(1~3월) 매출은 325억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 327억 달러보다 0.6% 감소했다. 그러나 순이익은 작년 1분기 3억 달러에서 올해 30억 달러로 10배 증가했으며, 세전 이익도 같은 기간 12억달러에서 44억달러로 급증했다.
GM은 반도체 부족 사태 이후 픽업트럭과 SUV 생산에 집중해왔다. 특히 최근에는 쉐보레 실버라도, GMC 시에라 픽업트럭에서 연료 관리 모듈을 빼고 차량을 생산하기도 했다. 일부 시스템을 제외하더라도 수익성이 좋은 차종의 경우 생산을 멈출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메리 바라 회장은 "(위기 관리에서) 속도와 민첩성이 최우선"이라며 "반도체 사태를 계기로 우리가 훨씬 더 효율적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도체 부족 사태가 끝나더라도 GM은 예전처럼 재고를 과도하게 갖고 있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현대차도 마찬가지다. 현대차의 올해 1분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27조3909억원, 1조6566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8.2%, 91.8%씩 증가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판매는 지난해 코로나19 기저 효과와 주요 국가들의 판매 회복세 영향으로 전년 동기 대비 증가했다"며 "제네시스와 SUV 등 고부가 가치 제품의 판매 비중이 전년 동기 대비 확대되면서 수익성 개선을 이끌었다"라고 밝혔다. 제네시스 판매 비중은 작년 1분기 1.8%에서 4.3%로, SUV 판매 비중은 같은 기간 42.9%에서 44.3%로 증가했다.
블룸버그는 "반도체 부족 사태로 자동차 업체들이 한정된 부품을 어떻게 할당할 지 우선 순위를 정한 덕분에 마진이 더 높은 차량을 만들고 있다"며 "이를 통해 친환경차에 실제로 투자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