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인간의 생명을 담보로 하던 소모전에서 벗어나, 사족보행 로봇이 위험한 전장을 누비는 '유무인복합체계(MUM-T)' 시대가 눈 앞으로 다가왔다.
황보제민 라이온로보틱스 대표는 지난달 26일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사무실에서 조선비즈와 만나 "첨단 로봇 기술을 통해 미래 전장에서는 그 누구도 피 흘리지 않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라이온로보틱스는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교수 출신인 황보제민 대표가 2023년 창업했다. 황보 대표는 사족보행 로봇 제어 기술을 실험실에만 두지 않고 실제 현장에 상용화하고자 창업을 결심했다.
특히 인간의 생명을 담보로 치러지는 전쟁이나 위험이 크고 사람들이 기피하는 산업 현장에 사람 대신 로봇을 투입해, 더 이상 아무도 피 흘리지 않는 안전한 미래를 만들겠다는 철학이 창업의 핵심 뼈대가 됐다. 그가 2019년 발표한 강화학습 기반 사족로봇 제어 논문은 피인용 수가 2200회를 돌파하고 네이처(Nature)지가 선정한 '가장 놀라운 논문 10선'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라이온로보틱스는 최근 세계 로봇 업계와 국방 당국의 이목을 동시에 집중시켰다. 자체 개발한 사족보행 로봇 '라이보2(RAIBO2)'가 세계 최초로 42.195km 마라톤 풀코스를 중도 충전 없이 4시간19분 만에 완주하면서다. 1~2시간 운용, 주행 거리 10km 안팎에 그쳤던 기존 글로벌 경쟁사들의 한계를 뛰어넘는 에너지 효율성을 입증한 셈이다.
이 같은 기술의 비결은 풀스택(Full-stack) 100% 내재화에 있다. 조립형 범용 부품에 의존하는 타사들과 달리, 라이온로보틱스는 모터, 감속기, 모터드라이버, 액추에이터 등 핵심 부품을 100% 직접 설계·제작한다. 중국산 부품을 사들여 조립하는 데 의존하는 상당수 로봇 기업들과 궤를 달리하는 지점이다.
또 기술적 강점의 핵심 축은 C++ 기반으로 자체 개발한 초고속 물리 엔진 시뮬레이터 '라이심(RaiSim)'이다. 강화학습 전용 고속 시뮬레이터를 자체 보유한 곳은 글로벌 IT 공룡인 엔비디아, 딥마인드 등을 제외하면 라이온로보틱스가 유일하다. 정밀한 접촉 동역학 모델을 가상 공간에서 초고속으로 계산해내어, 발 미끄러짐 예측, 무너지는 모래 지형 주행, 모션 캡처 없이 구현하는 고난도 파쿠르 등 복잡한 보행 기술을 가상에서 수 분 만에 학습시킨다.
황보 대표는 "소프트웨어 뿐만 아니라 모터, 감속기, 모터드라이버 등 핵심 부품까지 직접 설계해 버려지는 에너지를 극도로 줄였다"고 설명했다.
라이온로보틱스의 핵심 타깃은 국방과 핵심 인프라 시장이다. 저가 물량 공세를 펴는 중국 로봇 기업들과의 단순 가격 경쟁을 피하고, 보안 문제로 중국산 로봇 반입이 원천 차단된 서방 및 국내 방산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미 육군 '아미타이거(Army TIGER)' 전투 실험과 화생방 무인체계 정찰 실증을 성공적으로 마쳤으며, 8시간(약 50km) 연속 운용 능력을 바탕으로 2027년 시작되는 군용 다족보행 로봇 전력화 사업 진입을 준비 중이다.
글로벌 방산 시장 진출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무기 체계 도입에 깐깐한 싱가포르 국방과학연구소(DSO) 등 주요 글로벌 방산 기관을 고객사로 확보하고, 이미 사족보행 로봇 6대를 수출하는 실적을 거뒀다.
황보 대표는 군 전력화의 핵심을 신뢰성과 운용 시간으로 꼽았다. 아무리 성능이 뛰어난 로봇이라도 산악 지형이나 악천후에서 1시간 만에 배터리가 방전되거나, 작은 충격에 넘어지면 군사 작전에 투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라이보2는 IP68 방수·방진 최고 등급을 획득했고, 초저소음 설계와 8시간(약 50km) 연속 운용 능력을 확보해 군의 엄격한 요구조건(ROC)을 충족했다.
민간 공공 분야에서는 인력난이 심각한 고위험 산업 현장을 노린다. 현재 경찰청과 야간 치안 순찰 실증(PoC)을 진행 중이며, 포스코 및 한국남부발전 등과 협력해 고온·분진이 가득한 발전소 내부 자율 점검 로봇 투입을 준비하고 있다. 인간이 기피하는 위험하고 열악한 자리를 로봇이 안전하게 대체하도록 돕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기반으로 안정적인 대량 양산 체제 구축도 속도를 내고 있다. 연구실 수준의 시제품 제작을 넘어 수천 대의 로봇을 고장 없이 생산하기 위해, 최근 현대자동차 전동화 R&D 총괄 출신 임원 등을 영입하며 경영 및 생산 역량을 대폭 강화했다.
황보 대표는 "내년 중순 수십 대 규모의 시양산을 거쳐 내년 말 프로토 라인을 완성하며 본격적인 대량 양산 체제에 돌입할 계획"이라며 "대전 유성구에 450평 규모 공장을 기반으로 단순 부품 제조는 협력사를 활용하되, 핵심 조립과 로봇 성능 테스트는 직접 수행해 품질을 보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통해 당면한 사업 수요에 신속히 대응하고, 향후 3년간 차세대 모델인 '라이보3' 2000대 이상을 생산할 수 있는 대량 양산 인프라와 품질 체계를 완비할 계획이다.
라이온로보틱스는 지난해 SBVA(옛 소프트뱅크벤처스), 컴퍼니케이파트너스, 퓨처플레이, 산은캐피탈, IBK기업은행, IBK벤처투자로부터 총 23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
황보 대표는 "로봇은 인간의 일자리를 뺏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위협에서 보호하는 든든한 방패이자 대역"이라며 "차원이 다른 기동성과 신뢰성을 바탕으로 글로벌 로봇 종합 기업으로 도약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