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사망률 1위 암인 폐암. 그중에서도 전체 유전자 변이의 약 30%를 차지하는 'KRAS 변이'는 오랫동안 손댈 수 없는 표적으로 불렸다. 이 유전자에 이상이 생기면 세포는 멈추지 않고 계속 분열한다. 그 고장 난 스위치를 끄는 약이 없었던 것이다.

최근 KRAS G12C 억제제 등 표적항암제가 잇따라 등장했지만, 평균 6개월 남짓한 짧은 무진행생존기간(PFS·암이 더 진행되지 않고 유지되는 기간)과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내성'은 여전히 뼈아픈 한계로 지적된다.

이러한 가운데, 전혀 다른 무기를 들고 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국내 바이오텍이 있다. 세계 최초 아데노부속바이러스(AAV) 기반 유전자 치료제 'RX001'의 임상 1상을 진행 중인 진크래프트다.

암을 억제하는 것을 넘어, 암세포가 스스로 죽어버리게 만드는 '생물학적 프로그램'의 정상화를 꿈꾸는 배석철 대표를 서면으로 만났다.

배석철 진크래프트 대표./진크래프트

RX001이 노리는 것은 하나다. 암세포에 원래 있어야 할 기능을 돌려주는 것.

우리 몸의 세포에는 비정상적인 분열이 감지되면 스스로 죽도록 설계된 프로그램이 있다. 이른바 '세포자멸사(apoptosis)'다. KRAS 변이 암세포에서는 이 자폭 스위치가 꺼져 있다. RX001은 여기에 종양억제유전자인 'RUNX3'를 직접 집어넣어, 꺼진 스위치를 다시 켜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배 대표는 "특정 변이 하나에 국한되기보다, KRAS 변이 암에서 공통적으로 무너진 종양억제 경로를 회복시키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기존 표적항암제가 고장 난 스위치를 강제로 막는다면, RX001은 스위치 자체를 정상으로 되돌리려는 시도다.

전임상에서 RX001은 한 차례 투여만으로 84%의 종양 성장 억제율, 37.5%의 완전관해율(암이 완전히 사라진 비율)을 기록했다.

물론 전임상 결과가 임상에서 그대로 재현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배 대표 역시 이 점을 인정하면서도 "RX001의 차별성은 단순한 종양 크기 감소가 아니라, RUNX3 기능 회복이라는 기전 기반 반응이 실제 환자의 종양에서도 생물학적 신호로 확인될 수 있는지를 임상에서 검증해 나간다는 점에 있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고형암 분야에서 유전자 치료제가 고전했던 가장 큰 이유는, 치료 유전자를 암 조직에 충분히 전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혈관을 통해 온몸에 약을 뿌리는 전신 투여는 안전성 문제를 낳고, 종양을 둘러싼 미세환경이라는 장벽도 넘기 쉽지 않다.

진크래프트는 이를 '종양 내 국소투여' 전략으로 돌파한다. 암 덩어리에 직접 주사를 놓아 'AAV 벡터(유전자를 세포 안으로 나르는 바이러스 전달체)'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전신 노출을 최소화하면서 표적 병변에 치료 유전자를 곧바로 집어넣는다. 저격수가 총을 난사하는 대신 조준경을 들이대는 격이다.

투여 방식뿐만 아니라 전달체(벡터) 자체의 혁신도 이뤄냈다. 진크래프트의 독자 플랫폼 'SuperITR'이다.

AAV 벡터의 양 끝에는 ITR이라는 특수한 염기서열이 있다. 이 서열이 복잡하게 접혀 있어 유전자를 넣기도 어렵고 생산량도 적다는 게 기존 기술의 한계였다. SuperITR은 이 접힘 구조 한쪽을 단순화해, 공장에서 약을 더 쉽고 많이 만들 수 있게 한 기술이다.

기존 AAV는 유전자를 오래도록 발현하는 데 최적화돼 있다. 희귀 유전질환처럼 부족한 유전자를 평생 보충해야 하는 질환에 맞춘 설계다. 하지만 항암제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암세포가 죽으면 치료제도 함께 사라지는 것이 오히려 이상적이다.

배 대표는 "SuperITR은 고형암 세포사멸 목적에 맞게, 투약 후 빠른 시점에 발현이 시작되도록 개발됐다"고 설명했다.

이 플랫폼은 기존 생산 방식 대비 생산성과 '풀 캡시드(full-capsid)' 비율에서도 의미 있는 개선을 이뤘다. 풀 캡시드란 치료 유전자가 가득 들어찬 바이러스 껍데기를 뜻한다. 반대인 공(空) 캡시드는 껍데기만 있고 내용물이 없어 약효가 없다.

이 비율이 높아진다는 것은 같은 양을 생산해도 쓸 수 있는 약이 더 많아진다는 의미다. 향후 제조원가 절감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다.

진크래프트 로고./진크래프트

진크래프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AI 기반의 'DeepITR' 개발에도 착수했다.

유전자 서열에는 단백질을 만들지 않는 '비코딩 영역'이 있다. 이 영역의 아주 작은 서열 차이가 약의 생산량과 발현 효율에 생각보다 큰 영향을 미친다. 지금까지는 이를 최적화하기 위해 수많은 실험을 반복해야 했다.

DeepITR은 이 복잡한 관계를 AI가 미리 예측해, 단백질 구조예측 AI 알파폴드가 생물학 연구의 속도를 바꿨듯 AAV 벡터 설계의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향후 이를 기반으로 후보물질 위탁개발(CDO/CRO) 서비스 등 다양한 사업모델 확장도 구상 중이다.

즉, 진크래프트의 기술 구조는 3층이다. 치료 유전자(RUNX3), 전달 플랫폼(SuperITR), AI 설계 도구(DeepITR). 각 층이 서로를 강화하는 구조다.

본격적인 기술이전 타이밍은 임상 1상 데이터가 윤곽을 드러내는 시점이 될 전망이다.

배 대표는 "안전하게 투여할 수 있다는 근거와, 실제 환자 종양에서 RX001이 작동했다는 기전적 증거, 즉 종양 크기 변화나 질병 안정화 같은 생물학적 신호가 확인된다면 본격적인 논의가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적응증도 현재의 비소세포폐암에서 췌장암, 대장암 등으로 단계적으로 확장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중장기 목표는 2028~2029년 기업공개(IPO)다. 배 대표는 "향후 10년 내 유전자 치료제는 고형암을 포함한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될 것"이라며 "진크래프트는 그 중심에서 신약 후보물질과 플랫폼을 동시에 보유한 글로벌 기업으로 평가받고자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