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은 이제 얼마나 많이 만드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스마트하고 친환경적으로 만드느냐의 경쟁이다. AI 전환(AX)과 탈탄소가 새로운 경쟁력을 결정하는 시대가 시작됐다."
'조선업의 맥킨지'로 불리는 세계적인 선급협회 DNV(Det Norske Veritas)의 비달 돌로넨(Vidar Dolonen) 한국법인 대표는 최근 조선비즈와 인터뷰에서 "글로벌 조선업이 단순한 경기 회복이 아닌 친환경과 디지털 전환이 맞물린 구조적 슈퍼사이클에 진입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1864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설립된 DNV는 선박 검사와 품질 인증, 선박 건조·운항 컨설팅을 수행하는 선급협회다. 한국, 미국, 영국, 독일, 중국 등 전 세계 100여개국에 진출했고, 지난해 매출은 352억9100만크로네(약 5조5300억원)를 기록했다. 지난해 기준 전 세계 신조선의 26%가 DNV 선급을 받았다. 4척 중 1척은 인증하고 있는 셈. DNV는 조선업뿐 아니라 중공업·자동차·전기전자·에너지 분야에서도 인증과 컨설팅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돌로넨 대표는 "한국은 LNG 운반선 등 초고부가가치 선박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프로젝트 수행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중국이 생산능력과 공급망을 앞세워 빠르게 추격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AX, 스마트 야드 등 생산 혁신이 한국 조선업의 경쟁력을 좌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돌로넨 대표와의 일문일답.
―현 글로벌 조선업 시장을 진단한다면.
"지금의 조선업은 과거와 다른 구조적 슈퍼사이클에 진입했다. LNG 운반선 등 고부가 선박 수요 확대와 친환경 규제가 동시에 시장을 이끌고 있다. 과거에는 물동량 증가가 호황을 만들었다면, 지금은 탈탄소와 에너지 전환, 선박 노후화가 장기적인 수요를 만들고 있다. 다만 숙련 인력 부족과 생산능력 제약, 공급망 문제는 여전히 시장 성장의 변수다. 결국 '얼마나 많이 만드느냐'보다 '얼마나 스마트하고 지속가능하게 만드느냐'가 경쟁력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탈탄소와 에너지 전환이 조선업 패러다임 변화를 이끌고 있다.
"친환경 규제와 에너지 전환은 이제 선택이 아닌 구조적인 변화다. LNG를 넘어 메탄올과 암모니아 등 다양한 연료가 공존하는 '멀티 연료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조선소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 이제는 단순히 선박을 건조하는 것이 아니라 친환경 연료 기반 선박 설계와 연료 저장·공급 시스템, 운항 효율까지 아우르는 통합 솔루션을 제공하는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조선업은 탈탄소와 AX를 중심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맞고 있다."
―조선업 AX의 현재 수준은.
"전 세계 제조업에서 AX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 됐고, 조선업도 예외가 아니다. 과거 노동집약 산업으로 인식되던 조선소는 이제 데이터 기반 스마트 제조 산업으로 전환하고 있다. AI 활용은 이미 시범 사업 단계를 넘어 실제 성과를 내고 있다. 한국 조선업계는 AI와 로보틱스를 빠르게 도입해 공정·자재·인력 데이터를 통합 관리하고 있고, AI는 공정 지연을 예측하고 생산 계획을 최적화해 건조 기간을 단축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또한 디지털 트윈을 통해 선박과 조선소를 가상 공간에 구현해 설계부터 건조까지 시뮬레이션하면서 설계 오류와 재작업을 줄이고 있다. AI 기반 품질 검사와 자동화 설비 확대로 품질과 안전성도 높아지고 있다."
―조선업 AX는 아직 초기 단계로 한계도 분명하다.
"아직 전면적인 자동화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지금은 공정별로 AI를 적용해 부분적으로 생산성을 높이는 단계라고 볼 수 있다. AI 기반 생산계획 시스템과 스마트 야드 기술은 작업 일정과 자재, 인력 운영을 최적화하면서 생산 능력은 제한적이지만, 주문은 점점 복잡해지는 환경에서 조선소가 보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선박을 건조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플랫폼이다. 설계와 생산, 품질, 운영 데이터를 하나로 연결해 전 과정을 통합 관리하고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핵심 인프라다. 플랫폼 위에 AI가 결합하면 개별 공정 최적화를 넘어 조선소 전체 운영을 최적화할 수 있다. AX의 추진 속도가 미래 조선업 경쟁력을 결정할 것이다."
―한국 조선업 경쟁력은.
"한국은 LNG 운반선과 같은 초고부가 선박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극저온 화물창과 재액화 시스템 등 고난도 기술은 글로벌 표준을 주도하고 있다. 또 암모니아와 메탄올 등 차세대 친환경 선박 기술에서도 경쟁력이 있다. 무엇보다 설계와 엔지니어링, 프로젝트 수행, 품질관리까지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역량이 한국 조선업의 가장 큰 강점이다."
―중국의 추격은 어떻게 평가하나.
"중국은 생산능력과 공급망 경쟁력이 매우 강하다. 다만 앞으로 경쟁은 단순한 물량이 아니라 고난도 기술과 시스템 통합, 미래 연료 대응 능력에서 결정될 것이다. 한국은 안전성과 신뢰성이 중요한 고부가 선종에서 강점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 조선업의 고질적 인력 부족 문제 해법은.
"인력 문제 역시 AX와 연결된다. AI와 스마트 조선소, 로보틱스가 결합되면 같은 인력으로도 더 많은 생산이 가능해지고 물리적 노동 의존도를 줄일 수 있다. 동시에 핵심 기술 인력 중심으로 산업 구조를 재편해야 한다. 미래 조선소는 '완전한 스마트 야드'로 진화할 것이다. 용접과 도장, 물류 등 반복 작업은 대부분 로봇이 수행하고 작업자는 이를 관리·제어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결국 조선소는 '근로 중심 현장'에서 '운영 중심의 지능형 공장'으로 바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를 계기로 한국 조선사들의 미국 투자와 현지 생산이 확대되고 있다.
"조선업이 전략 산업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흐름과 맞닿아 있다. 공급망 재편과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지면서 조선업은 에너지와 교역, 안보를 뒷받침하는 국가 핵심 산업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앞으로 지역별 생산 구조와 기술 표준, 공급망 전략은 더욱 분절될 것이고, 조선업의 전략적 중요성은 계속 커질 것이다. 결국 한국 조선업도 탈탄소, 디지털 전환과 AX, 전략 산업화라는 세 가지 핵심 축을 중심으로 경쟁력을 더욱 강화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