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불렸다. 값싼 노동력과 거대한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글로벌 제조기지 역할을 수행하며 세계 공급망의 중심에 섰다. 하지만 이제 중국은 단순한 생산기지를 넘어 AI와 로봇, 전기차 등 첨단 분야를 이끄는 '기술국가(Techno State)'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특히 제조업 현장에 AI와 산업용 로봇을 대규모로 도입하며 생산 공정을 지능화하는 AI 전환(AX)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제조업 경쟁력을 기반으로 첨단 산업까지 장악하려는 전략이다.
최근 김창현 중국유럽국제경영대학원(CEIBS) 교수를 만나 중국 제조업과 AX 전략, 한국의 대응 방안을 물었다. 중국 상하이에 있는 CEIBS는 파이낸셜타임스(FT)가 선정한 글로벌 MBA 평가에서 지속적으로 세계 최상위권을 유지하며, 아시아에서는 부동의 1위를 지켜온 명문 비즈니스 스쿨이다.
김 교수는 LG경제연구원 등에서 산업과 실물경제를 연구하며 현장 경험을 쌓았고, 싱가포르경영대(SMU)를 거쳐 현재 CEIBS 종신교수로 재직하며 전략경영 분야를 연구·강의하고 있다.
김 교수는 중국의 부상을 단순히 국가 주도의 산업정책으로 설명하는 것은 본질을 놓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중국은 중앙정부가 방향을 제시하고 지방정부가 경쟁하며, 기업들은 시장에서 생존 경쟁을 벌이는 독특한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김 교수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곳이 중국 시장"이라며 "국가가 승자를 미리 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살아남은 기업에 지원이 집중되는 '선(先) 경쟁, 후(後) 지원' 구조가 중국 기술 굴기의 원동력"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중국이 제조업 기반 위에 AI와 로봇 등을 결합해 첨단 제조 강국으로 진화하고 있다"며 샤오미를 예로 들었다. 그는 "샤오미의 베이징 전기차 스마트공장은 AI와 로봇 시스템을 적용해 핵심 공정 자동화율 100%를 구현했다"고 했다. 김 교수는 이어 "세계의 공장을 거머쥔 국가가 결국 혁신과 패권까지 확보한다는 역사적 흐름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김 교수와의 일문일답.
―'세계의 공장' 중국의 경쟁력을 값싼 노동력에서 찾는 시각이 많다.
"중국 제조업의 경쟁력을 단순히 저임금 노동력과 거대 내수시장으로 설명하면 본질을 놓치게 된다. 진짜 핵심은 중국만이 갖춘 '풀셋 산업구조(Full-set Industrial Structure)'와 '공급망 완결성(Supply Chain Completeness)'이다. 중국은 유엔(UN)이 분류한 거의 모든 제조업 분야를 보유한 유일한 국가로, 나사를 깎는 뿌리산업부터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첨단 기술까지 타국의 도움 없이 생산할 수 있는 구조를 구축했다.
이 같은 경쟁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개혁·개방 이후 약 20년간 제조업의 단위노동비용을 낮고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전 세계 제조 역량을 스펀지처럼 흡수한 결과다. 전 세계 제조기업들이 중국으로 몰려들었고, 중국은 단순 조립을 넘어 소재·부품·장비 전반의 제조 역량을 축적하며 오늘날의 공급망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최근 출간한 '테크노 스테이트 차이나'에서 중국의 부상을 단순한 국가 주도 산업정책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중국 발전 모델의 핵심은.
"중국을 움직이는 핵심 원리는 이념이나 교조주의가 아니다. 지금의 중국은 '공학자가 주도하는 국가(Engineer-led China)', 즉 철저한 테크노크라시(Technocracy·기술관료제)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중국 최고 정책 결정권자 상당수가 물리학, 화학, 전기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 출신이다. 이들은 국가 운영을 정치적 담론이 아니라 데이터와 기술을 기반으로 끊임없이 최적화해야 하는 '거대한 공학 프로젝트'로 바라본다. 이 거대한 공학 시스템은 철저하게 거시적 기획과 야생의 시장이 결합한 삼각 편대로 작동한다."
―삼각 편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첫 번째 축은 중앙정부의 장기 전략이고, 두 번째 축은 이를 실행하는 지방정부 간 치열한 경쟁이다. 중앙정부는 마치 대기업 집단의 '그룹 본사'처럼 큰 그림과 기술 로드맵을 제시한다. 실제 혁신의 속도를 만드는 건 4만여 개의 지방정부다. 각 성(省)과 시(市)를 이끄는 지방관들은 '자회사 CEO'처럼 움직이며 자금과 토지, 펀드를 동원해 유망 기업을 유치하고자 처절하게 대리 전술을 펼친다."
―마지막 축은.
"시장에서 벌어지는 극한의 경쟁이다.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적자생존이 벌어지는 곳이 바로 중국 시장이다. 전기차, AI, 이커머스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기업들은 '네이쥐안(內卷)'으로 불리는 극한의 경쟁을 펼친다. 국가는 절대 승자를 미리 기획하지 않는다. 거시적 방향성은 국가가 제시하지만, 최종적으로 링 위에서 살아남을 플레이어는 시장이 결정한다. 생존력을 검증한 기업에 비로소 정책 지원을 몰아주는 '선(先) 경쟁, 후(後) 지원' 구조가 중국 기술 굴기의 진짜 실체다."
―중국 기술 굴기를 논할 때 화웨이를 빼놓을 수 없다.
"화웨이는 중국 기술 굴기의 상징이지만, 처음부터 국가의 보호 아래 성장한 기업이 아니다. 1980년대 중국 통신시장 개방 당시 화웨이는 '400대 1′이라는 처절한 야생 경쟁률을 뚫고 글로벌 거인들과 싸워 살아남은 최후의 승자였다. 더 주목할 부분은 미국의 규제가 가져온 '제재의 역설'이다. 미국은 첨단 반도체와 소프트웨어 공급을 차단하며 화웨이를 압박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중국 반도체·AI 기술 생태계 자립을 촉진하는 계기가 됐다."
―중국의 제조 AX 전략은.
"단순한 공장 자동화가 아니라 제조 현장을 디지털 세계와 실시간으로 연결하는 '지능형 제조 인프라' 구축에 가깝다. 중국 정부는 베이징, 상하이, 선전 등을 AI 혁신 시범구로 지정하고 규제를 최소화해 자율주행, 드론, 휴머노이드 로봇 등 신기술의 상용화를 빠르게 추진했다.
특히 중국의 강점은 AI와 빅데이터를 생산 전 과정에 적용한 스마트팩토리다. 현재 전 세계 등대공장(Lighthouse Factory)의 약 40%가 중국에 있고, AI가 생산과 품질관리를 통합 운영하는 '불 꺼진 공장(Dark Factory)'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연구개발 단계에서는 대규모 인력과 데이터를 활용하고, 생산 현장에서는 AI와 자동화 시스템을 통해 24시간 가동하는 것이 중국 제조 혁신의 핵심이다."
―산업용 로봇 역시 중국 제조업 혁신의 핵심 축으로 꼽힌다.
"한국이 여전히 로봇 밀도(노동자 1만명당 산업용 로봇 수)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최근 중국의 추격 속도는 매우 빠르다. 현재 전 세계 신규 산업용 로봇 설치량의 절반 이상이 중국 제조 현장에 집중되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중국은 누적 로봇 밀도에서 독일과 일본을 제치고 세계 3위로 올라섰다. 단순히 로봇을 많이 구매하는 것을 넘어 자체 생산 능력과 현장 적용 역량까지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AI 기반 스마트팩토리와 로봇 자동화가 결합하면서 중국은 제조업 전반의 생산성과 비용 경쟁력을 동시에 끌어올리고 있다."
―제조 AX를 성공적으로 추진 중인 중국 기업은.
"샤오미다. 샤오미는 과거 설계와 플랫폼에 집중하고 생산은 외부에 맡기는 자산 경량화 전략으로 성장했지만, 전기차 사업에 진출하면서 제조 전략을 근본적으로 바꿨다. 전기차와 AI 시대에는 플랫폼과 하드웨어의 수직 통합이 필수라고 판단해 직접 생산 비중을 높이고, 자율주행 알고리즘과 자체 칩 개발 등 핵심 기술 내재화에도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스마트폰을 넘어 자동차와 가전 분야까지 확산되고 있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베이징의 샤오미 전기차 스마트공장이다. 공장 전반에 AI와 로봇 시스템을 적용해 핵심 공정 자동화율 100%, 전체 자동화율 90% 이상의 다크 팩토리를 구축했다. 과거 플랫폼 기업이었던 샤오미가 직접 제조와 AI를 결합한 하드테크 기업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AX로 인한 일자리 감소 등 사회적 부작용에 대한 우려는 없나.
"중국이 AX와 자동화를 강하게 밀어붙이는 배경에는 '제조업 사수'라는 국가 전략이 있다. 중국은 미국과 서방이 제조업 공동화를 겪으면서 산업 경쟁력과 공급망 안정성이 약화되는 과정을 지켜봤다. 이 때문에 제조업을 국가 경쟁력의 핵심 기반으로 보고, 임금 상승과 인구 구조 변화 속에서도 생산기지를 국내에 유지하기 위해 AI와 로봇 도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자동화가 확대되고 있음에도 중국이 노동집약적 산업의 경쟁력을 잃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임금이 오르면 신발, 의류, 완구 같은 산업이 동남아시아나 인도로 이전해야 하지만, 중국은 AI와 자동화 설비를 대거 도입해 생산성과 원가 경쟁력을 높이면서 여전히 글로벌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다. 결국 중국의 AX 전략은 첨단 산업 육성에 그치지 않는다. AI와 로봇을 활용해 전기차, 반도체 같은 첨단 제조업은 물론 전통적인 노동집약 산업까지 동시에 지키면서 글로벌 공급망 주도권을 강화하려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한국 기업의 대응 방안은.
"중국의 추격을 피해 초고가 프리미엄 시장으로만 향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법이 아니다. 과거 일본 제조업이 겪은 '프리미엄의 역설'을 반복할 수 있다. 대중 시장(볼륨 마켓)을 중국에 내주고 프리미엄만 강화하면 수익성은 높아질 수 있지만, 공장 가동률과 자산회전율이 떨어져 기업 전체 수익성이 악화될 수 있다. 사업 구조를 유연하게 바꾸는 접근이 필요하다. 무거운 생산설비 중심의 구조에서 벗어나 '에셋 라이트(Asset-light)' 전략으로 전환하고, 중국·대만의 공급망에 올라타 가성비 볼륨 마켓의 지배력도 함께 사수해야 한다.
미·중 갈등으로 세계 경제가 '두 개의 세계(Two Worlds)'로 재편되는 과정은 한국에 위기이자 기회다. 안보와 첨단기술 분야에서는 미국과 협력하고, 시장과 제조 공급망에서는 중국의 효율성을 활용하는 '한체중서용(韓體中西用)'의 실용적 접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