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지업계 투톱인 한솔제지(213500)무림페이퍼(009200)의 주가가 연일 하락하고 있다. 중동전쟁발 실적 악화와 공정거래위원회 과징금 부과에 이어 6·3 지방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투표용지 부족 사태'까지 겹치면서 투자심리가 위축된 것으로 풀이된다.

한솔제지 주가는 지난 5일 종가 기준 6400원을 기록했다. 올해 1월 초 8000원대 초반에서 거래되던 주가는 현재 약 21% 하락했다.

무림페이퍼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 5일 종가는 1483원으로, 올해 1월 1900원대와 비교하면 약 22% 떨어졌다. 두 회사의 주가는 최근 4년간 흐름과 비교해도 최저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래픽=손민균

한솔제지와 무림페이퍼의 주가 하락 배경에는 실적 부진이 있다. 한솔제지는 올해 1분기 매출 5598억원, 영업이익 112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은 2.7%, 영업이익은 44.8% 감소했다.

무림페이퍼의 실적은 더욱 부진했다. 1분기 매출은 3073억원으로 전년 대비 3.6% 줄었고, 영업이익은 1억5000만원으로 96% 급감했다.

중동 지역 지정학적 갈등에 따른 원재료 가격 부담도 수익성 악화 요인으로 꼽힌다. 여기에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4월 한솔제지와 무림페이퍼 등 제지업체들의 인쇄용지 가격 담합 혐의를 적발하고 총 3300억원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악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솔제지와 무림페이퍼는 투표용지 원지 공급업체로 참여했다. 제지업계에 따르면 두 회사는 지역별로 물량을 나눠 공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선거 때마다 두 회사는 투표용지 공급업체로 선정되며 선거 관련 수혜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선거가 오히려 악재로 작용했다. 6월 3일 선거 당일 서울 송파구, 강남구 등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가 지연되면서 두 기업의 주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벌어졌던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 앞 4일 새벽에 시민들이 모여 '개표 중단과 선거무효'를 요구하고 있다. /뉴스1

다만 투표용지 공급 구조를 보면 제지업체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선거용 투표용지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인쇄업체에 제작을 의뢰하는 방식으로, 인쇄업체가 필요한 규격의 특수 용지를 제지업체에 주문하면 제지업체는 이에 맞춰 원지를 공급한다. 실제 투표용지 인쇄와 물량 관리, 지역별 배포는 인쇄업체가 담당하며 선관위가 전 과정을 총괄한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제지기업이 '투표용지 공급업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형성돼 있어 관련 부정 이슈가 두 회사의 주가에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한 어떤 인쇄업체가 투표용지 제작을 맡았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선거 관련 인쇄 업무는 보안과 공정성 확보를 이유로 사업 내용을 외부에 알리지 않고 있다.

제지업계에서는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 억울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한 제지업계 관계자는 "제지업체는 주문받은 규격과 물량에 맞춰 원지를 공급하는 역할만 담당할 뿐 실제 인쇄나 물량 관리 과정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며 "최근 업황 부진에 이어 예상치 못한 악재까지 겹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