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미러부터 변속기까지, 폐차 한 대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부품은 그 자체로 거대한 '노다지'다. 하지만 그동안 이 시장은 철저히 아날로그의 영역이었다.
기름때 묻은 장부와 작업자의 기억에 의존하던 약 200조원 규모의 글로벌 자동차 재활용 시장에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라는 '디지털 엔진'을 장착한 스타트업이 나타났다. 바로 박원재 대표가 이끄는 어메스다. 어메스는 차량식별번호(VIN)를 기반으로 자동차 부품을 식별·검증하는 솔루션 기업으로, 약 116조원에 이르는 글로벌 자동차 중고 부품 거래 시장까지 영역 확장을 노리고 있다.
박 대표는 최근 조선비즈와 만나 자동차 중고 부품 시장을 "자격증 없는 전문가들의 시장"이라고 정의했다. BMW 앞 범퍼 하나를 주문하려 해도 모델과 연식에 따라 명칭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3~5년의 숙련된 경험 없이는 부품 하나도 제대로 발주하기 어렵다. 게다가 이 시장은 한 번 사면 반품이 거의 불가능하다. 1000만원이 넘는 헤드램프를 잘못 발주하는 순간 손해는 고스란히 정비소나 부품 유통업체의 몫이 된다.
실제로 국내 폐차 차량에서 발생하는 부품 가운데 약 70%가 정확한 부품 식별 정보 없이 유통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어메스는 이로 인해 발생하는 미거래 또는 저가 처분 규모가 연간 약 2조5000억원 수준에 달한다고 보고 있다.
어메스의 '파츠핏'은 이 문제 해결을 목표로 개발됐다. VIN만 입력하면 부품 번호, 호환성, 도해도 등 약 14억3000만건에 달하는 데이터를 즉각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어메스는 14개 브랜드, 12만6000여개 차종 데이터를 확보한 상태다.
공급자인 폐차장에서도 생산성 개선 효과가 확인됐다. 월 300대를 처리하는 한 폐차장은 파츠핏 도입 후, 대당 30분이 걸리던 부품 등록 시간을 5분으로 줄였다. 부품 등록 인력도 15명에서 2명으로 줄일 수 있었다.
어메스는 부품 관리에서 나아가 유통 영역으로 솔루션을 확장할 계획이다. 박 대표는 폐차장을 "차를 부품으로 분해해 판매하는 고마진 제조업"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유럽에서는 중고 부품이 신품 대비 70% 수준의 시세를 형성한다. 국내는 30%에 불과하다. 한국산 중고차 부품을 유럽·미국 등 글로벌 시장에 소매로 수출하면 마진 구조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게 어메스의 계산이다.
글로벌 유통 시장 확대 과정에서 박 대표가 특히 강조하는 지표는 '반품률'이다. 일례로 미국 오프라인 자동차 부품 시장의 평균 반품률은 약 22%에 달한다. 차가 복잡해지면서 모양은 같아도 핀(Pin) 수나 내부 프로그래밍이 다른 부품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현지 기업들이 "틀리면 반품해주면 된다"는 관행을 유지하는 사이, 어메스는 반품률을 6% 수준까지 낮출 수 있다는 점을 핵심 경쟁력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미국 온라인 자동차 부품 시장의 평균 반품률 수준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대신 API 형태로 솔루션을 공급한다는 전략이다. 기존 플랫폼에 직접 연동하는 방식이 비용 효율성이 더 높다는 판단에서다.
박 대표는 전기차(EV) 보급 확대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EV라고 해서 데이터 구축 과정이나 난이도가 달라지지 않는다"며 "오히려 부품 단가가 높고 수리비 검증 필요성이 큰 EV 시장에서는 어메스 솔루션의 가치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글로벌 보험 수리비 검증 시장으로의 확장 가능성과도 맞닿아 있다는 설명이다.
현재 어메스 매출의 절반 이상은 국내 보험사 전용 솔루션 'CA'에서 발생하고 있다. 파츠핏과 기본 구조는 같지만, 사고 차량 수리 과정에서 청구되는 부품이 적정한지와 수량이 맞는지를 AI가 실시간으로 검증한다. 과거에는 보험 담당자의 경험과 숙련도에 의존하던 영역이다.
박 대표는 "이제까지는 정비소가 '200만원 할증 기준'을 맞추기 위해 과잉 청구를 해도 걸러낼 명분이 부족했지만 한 고객사의 경우 어메스 도입 초기 100건 중 24건 수준이던 오청구 비율이 현재 6%대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검증 체계가 작동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시장의 자정 작용이 시작된 것이란 해석이다.
DB손해보험은 2025년 한 해 동안 어메스의 솔루션을 통해 약 46억5000만원의 손해액을 절감했다. 솔루션 사용 비용 대비 ROI(투자 대비 수익)는 약 3배 수준이다. 사고 차량 손해사정 처리 시간 역시 건당 49.9분에서 8.7분으로 단축돼 약 5.7배의 업무 효율 개선 효과가 나타났다.
박 대표는 "궁극적으로는 모두가 수리비 청구 내역을 투명하게 납득할 수 있는 '표준안'을 제시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현재 손해보험협회와도 관련 방안을 논의 중이다.
글로벌 보험 시장 진출은 고객사의 협력을 우선 레버리지로 삼는다. 박 대표는 "DB손보의 기존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방식을 협의 중"이라며 "독자적으로도 북미 최대 보험사인 스테이트팜, 프로그레시브 등과 기술실증(PoC)을 마쳤다"고 밝혔다.
어메스의 누적 투자액은 약 90억원이다. 2028년 기업공개(IPO)가 목표다. 박 대표는 "2028년까지는 국내 보험 시장 점유율 확대가 최우선"이라며 "이달 중 유럽·북미 데이터 개발 완료 이후 2028년부터 본격적인 글로벌 확장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