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이커머스에 쏠렸던 벤처 투자 흐름이 인공지능(AI), 반도체, 로보틱스 등 '딥테크'로 이동하고 있다. 과거와 달리 딥테크 스타트업 인수 시점이 앞당겨진 데다, 희소한 지식재산권(IP) 확보가 기업 경쟁력으로 부상하면서 기술 검증 단계부터 지분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투자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일러스트=Chat GPT

8일 스타트업 업계에 따르면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해 딥테크 10대 분야 벤처 투자 동향을 검토할 계획이다. 2024년 딥테크 10대 분야에 대한 투자는 총 3조6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약 34% 상승했다. 2020년 이래 최대 규모로 딥테크 분야에 관심이 커지고 있는 만큼, 지난해 투자 규모도 집계할 것으로 보인다.

한때 벤처 생태계는 이커머스 플랫폼이 투자 열풍을 이끌었다. 하지만 플랫폼 특성상 수수료와 광고에 수익 구조가 집중되면서 성장 한계와 수익성 논란이 동시에 불거졌고, 차별화된 기술 없는 사업 모델 탓에 시장에 안착하지 못한 사례도 발생했다.

실제 쿠팡 대항마로 꼽혔던 위메프는 지난해 파산했고, 티몬은 회생 절차를 거쳐 신선식품 새벽 배송 전문 기업 오아시스에 인수됐으나 정상 영업 재개 시점이 요원한 상황이다. 기업 가치 8000억원대로 평가받았던 명품 커머스 플랫폼 기업 발란도 파산 선고를 받았다.

그사이 정부와 민간에서는 딥테크 성장에 시동을 걸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올해 딥테크 챌린지 프로젝트(DCP) '생태계혁신형'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다수 중소벤처기업, 투자 기관, 대학·연구소, 대·중견기업 등으로 구성된 팀에 프로젝트당 4년간 최대 200억원의 연구·개발 자금을 지원한다. LG의 오픈 이노베이션 플랫폼 슈퍼스타트도 유망 딥테크 스타트업을 발굴에 나섰다.

여기에 '최소 10년은 지나야 엑시트가 가능하다'는 딥테크 투자 공식에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해외에서는 기술 검증 초기 단계 스타트업에 일찌감치 투자하거나 인수에 나서는 사례가 나왔다.

미국 방산 AI 기업 안두릴 인더스트리즈는 2022년 자율 무인 잠수정(AUV) 기술 기업 다이브 테크놀로지를 창업 4년 내외 시점에 인수하며 수중 자율 시스템 역량을 확보했다.

미국 산업 자동화 기업 락웰 오토메이션도 2023년 클리어패스 로보틱스를 인수해 자율 운반차(AMR) 기술을 공장 자동화 전략에 접목했다. 성숙 단계 기업이 아닌 초기·중기 기술 기업을 인수해 시장 주도권 확보에 나섰다.

국내에서는 딥테크 경쟁력에 기반해 플랫폼으로 확장하는 기업도 있다.

차량 외장 설계 기업 에이드로는 부품 개발 과정에서 축적한 실차 공기역학 데이터를 기반으로 AI 설계 플랫폼 'AOX'를 구축했다. 업계에서는 범용 플랫폼과 달리 장기간 축적한 실차 데이터와 공기역학 기술을 경쟁력으로 내세운 점을 성장 배경으로 꼽는다. 에이드로는 지난해 매출 165억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50% 증가했다.

벤처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시장이 열린 뒤 후속 투자나 인수에 나섰다면, 지금은 기술 선점이 곧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만큼 상용화 이전 단계에서도 투자를 결정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특히 AI와 반도체처럼 진입 장벽이 높은 분야일수록 초기 지분 확보 경쟁이 더 치열해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