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과 2021년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에 이어, 최근 정부가 근로감독관 2000명 증원 계획을 발표하는 등 고강도 현장 지도·감독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산업 현장 안전 점검 확대의 필요성에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으나, 행정 대응 역량이 부족한 중소·하청업체들 사이에서는 실무적 부담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한 중소 건설업체 관계자는 "대기업 원청은 법적 처벌을 피하기 위해 안전·예산·인사 등 분절된 행정 업무를 하청에 고스란히 떠넘기는 실정"이라며 "원청 담당자들이 '자기 책임 회피'식으로 하달하는 방대한 요구사항을 전담 조직도 없는 소규모 하청업체가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법이 강화될수록 원청의 안전 관리 책임은 오히려 하청의 '서류 증빙'으로 대체되고 있다"며 "정해진 공기(工期)와 예산 안에서 감독 대응에 따른 유무형의 비용 부담을 하청업체가 고스란히 떠안으며 현장의 안전 체력이 급격히 저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러스트=챗GPT

◇산재 사망률 OECD 평균 1.6배…정부, 14만개 사업장 '고강도 감독' 예고

고용노동부는 지난 1월 '근로감독 행정 혁신방안'을 발표하고 현재 5만개 수준인 감독 대상 사업장을 2027년까지 14만개로 대폭 늘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현장 감독 횟수는 약 2.8배 증가할 전망이다.

이번 인력 확충안의 핵심은 총 2000명의 근로감독관 증원이다. 특히 산업안전 분야 감독관 비중을 2028년까지 전체의 50%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노동 분야 역시 임금체불과 장시간 노동뿐 아니라, 소위 '가짜 3.3 계약' 등 근로기준법 회피 사례를 집중 점검 대상에 포함했다.

감독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대책도 병행된다. 익명 신고에 기반한 상시 감독과 실질적인 근무 실태 조사를 본격 도입하며, 상습적∙악의적 법 위반, 안전보건조치의무 위반 사업주에 대해서는 시정지시 없이 즉각적 제재를 가한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이번 정책은 양적∙질적 측면 모두 전례 없는 수준으로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며 "근로감독의 운영 방식과 성격 자체가 전환된다는 점에서 기업의 인사·노무 관리 전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가 이 같은 고강도 규제 카드를 꺼낸 것은 주요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높은 국내 산업재해 지표를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국제노동기구 통계에 따르면 2023년 한국의 전체 산업 사고사망만인율(근로자 1만명당 산재 사망자 수)은 0.39를 기록했다. 이는 OECD 주요 10개국 평균인 0.24의 1.6배에 달하는 수치다.

한국의 건설업 사고사망만인율은 1.59로 더 높다. 이는 OECD 상위 10개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동일 국가군 평균은 0.78이다.

2021년 국내 사업 및 사업체 규모별 요양재해자 수./한국규제학회

◇안전 규제 1220개 조항…그러나 300인 미만 사업장 재해율은 '반등'

문제는 이처럼 잇따라 도입되는 규제들이 실질적인 예방보다는 중복 규제와 이중 처벌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규제학회에 따르면 현재 정부는 산업안전과 관련해 총 1220개 조항으로 기업을 규제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 외에도 다수의 관계 법령이 얽혀 있어, 현장에서는 어떤 기준을 우선해야 할지 혼선이 적지 않다.

철도 공사 현장이 한 예다. 사업주가 고용노동부의 안전 기준을 모두 준수했더라도, 철도안전법상 '작업 책임자 배치' 기준을 충실히 이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처벌을 피하기 어렵다. 이 경우 타법 위반 사실은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보건 확보 의무 위반'으로 간주되어 형사 처벌의 근거가 될 수 있다.

기업의 역량이 '실질적 사고 예방'이 아닌 '처벌 면피용 서류 작성'에 매몰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규제의 양적 팽창은 지표 개선으로도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300인 미만 사업장의 재해율은 2010년대 중반까지 하락세를 보이다 최근 다시 반등하는 'U자형' 곡선을 그리고 있다.

특히 규제가 대폭 강화된 최근 5년 사이의 지표는 더욱 부정적이다. 2017년 0.55%까지 떨어졌던 300인 미만 사업장 재해율은 2019년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과 2021년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거치며 오히려 상승해 2024년 기준 0.70%까지 올라섰다.

사업장 규모별로는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의 취약성이 두드러졌다. 전체 사망 사고의 80.9%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으며, 이 중에서도 5인 미만 영세 사업장의 비중이 38.4%로 가장 높았다.

◇규제 순응력 낮은 소규모 사업장…"단속보다 예방 역량 돕는 행정 필요"

전문가들은 촘촘한 규제로 기업을 옥죄는 방식에서 벗어나, 현장 특성에 맞춰 위험 요인을 스스로 관리하는 '자율 규제 체계'로의 전환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성공 사례로는 영국이 꼽힌다. 1974년 영국은 세부 지침 대신 최종 목표만 제시하는 '목표지향적' 규제를 도입했다. 기존 규제가 "안전모 착용, 난간 1m 설치" 등 체크리스트 이행에 치중했다면, "사고 예방을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다하라"는 포괄적 의무를 부여한 것이다.

배관표 충남대 국가정책전문대학원 교수는 "자율 규제는 산업계를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법으로 기본 의무를 명시하되 일상적 안전 관리는 현장 주체들이 주도하게 하는 것"이라며 "근로자가 직접 참여해 실무 중심의 안전 기준을 만드는 등 점진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배 교수는 또 파편화된 현행 법률들을 성과 중심의 단일 법률로 통합해 규제의 비효율을 제거하고, 영국의 보건안전청(HSE)과 같은 독립적인 안전 전문 행정 기구를 설립해 정책의 전문성과 집행력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율 규제 도입 시 우려되는 소규모 사업장의 관리 공백에 대해서는 '중간 조직'의 역할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개별 중소기업이 자율 체계를 구축하기는 쉽지 않다"며 "업종별 협회나 지역 단위 협의체 등 중간 조직이 표준 위험 관리 기준을 공동 수립하고 보급하는 지원 체계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소규모 사업장들이 강화된 안전 기준을 준수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며 "맞춤형 컨설팅을 포함한 다각적인 지원책을 지속적으로 확충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