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박스 제작에 사용되는 원재료인 '골판지 원지' 판매 업체들이 2024년 가격 인상 이후 2년도 채 지나지 않아 추가 인상에 나섰다. 수익성 악화를 감내하기 어려워졌다는 판단이다. 중소·영세 가공업체들은 원지 가격 인상분을 즉각 납품 단가에 반영하기 어려워 부담이 커지고 있다.

경기 김포의 한 중소기업 공장./뉴스1

6일 제지업계에 따르면 태림페이퍼와 전주페이퍼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 사이 골판지 원지 가격 인상을 완료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수출포장(002200) 역시 올해 1월 중순 인상을 단행했고, 아진피앤피는 이미 일부 인상을 반영한 뒤 추가 조정을 단계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인상 폭은 업체별로 10~25% 수준이다.

골판지 기준 가격으로 통하는 아시아제지와 중견 규모인 신대양제지(016590), 삼보판지(023600)도 영업 부서를 중심으로 인상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 매각설이 돌고 있는 한솔그룹 계열사 한솔페이퍼텍은 가격 인상 공문을 발송했다.

제지업계는 불황의 늪을 지나고 있다. 원지 가격 인상도 불안정한 원자재 가격 흐름과 인건비 부담, 고정비 구조 악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골판지 원지의 주원료인 수입 펄프와 재활용 폐지는 글로벌 경기와 환율 변동에 직접 영향을 받는다. SBHK(미국남부산혼합활엽수펄프) 가격은 지난해 1월 톤당 665달러였으나 올해 1월 톤당 700달러로 상승했다.

2024년 6월 고점(톤당 895달러) 대비 가격 부담은 줄었으나 지속된 고비용 구조로 실적 하락세가 뚜렷하다.

태림페이퍼는 2022년 순이익이 약 816억원이었으나 2024년 418억원으로 반 토막이 났다. 전주페이퍼는 2023~2024년 연속으로 300억원이 넘는 당기순손실을 기록했고, 한국수출포장 역시 2024년 순이익이 약 32억원으로 2022년(200억원) 대비 84% 감소했다. 아시아제지, 신대양제지, 삼보판지 등은 여전히 흑자를 유지하고 있지만, 수익성은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

제지업체들은 2024년 중순 원지 가격을 한 차례 올렸다. 당시 인상 폭은 톤당 8만~9만원 사이였다. 2021년과 비교해 약 20% 올렸다. 과거 가격 인상에 동참했던 태림페이퍼와 한솔페이퍼텍은 최근 매각설이 나오는 상황에서도 실적 부진과 비용 부담 탓에 추가 인상을 단행했다.

원지 가격 상승은 중소·영세 골판지 가공업체들에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가공업체들은 원지를 공급받아 물류용 상자, 제품 포장 박스 등 완성된 포장재를 생산한다. 대형 유통사·제조사를 상대로 장기 납품 계약을 맺는 경우가 많아 단기간에 납품 단가를 인상하기 어렵고, 이윤이 잠식될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코스피가 5000대를 넘나드는 강세장임에도 골판지 관련 종목들은 신저가 부근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지난 몇 년간 이어진 실적 부진과 수익성 악화가 주가에 반영된 결과"라고 말했다.

이어 "납품대금 연동제가 실효성 있게 운영돼야 원가 상승분이 분담되는 구조가 정착될 것"이라며 "납품 구조 개선과 업계 전반의 체질 개선도 필요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