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 구조물 제조 중소기업 A사는 최근 '환율 비상'이 걸렸다. 국내 협력 대기업을 통해 해외에서 철광석 원재료를 공급받고 있는데, 지난해 10월 이후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자, 철광석 원재료 공급 단가를 매달 3~4%씩 인상하고 있어서다. 협력 대기업은 오는 2월에도 추가로 3~4%의 가격 인상을 예고한 상태다.
그러나 A사는 완성품을 납품하는 수요처에 가격 인상을 요구하지 못하고 있다. 거래 단절 가능성 때문이다. 일부 거래처는 이미 원가 상승 가능성을 이유로 납품을 보류하고 있다.
A사 대표는 "원자재 가격이 이렇게 오르면 우리도 납품 단가를 연동해 인상해야 하지만, 그렇게 하면 거래처를 잃을 수 있다"며 "결국 마진을 줄이면서 버티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내 중소기업들이 고환율(원화 가치 하락)로 벼랑 끝에 몰리고 있다. 환율 상승은 원자재 수입 비용 증가로 직결되며, 자금 여력이 취약한 중소기업의 재무 안정성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지난 5일 원달러 환율은 1443.8원에 마감했다. 지난해 원달러 환율의 연간 평균은 1422원으로, 2024년 평균 환율 1363.98원보다 4.3% 높았다. 이는 연평균 기준으로 외환위기 시절인 1998년(1398.9원)을 넘어서는 역대 최고 수준이다.
◇1400원대 환율 뉴노멀…中企 재무 부담 가중
국내 중소기업 상당수는 대기업 등을 통해 원자재를 수입한 뒤 가공해 다시 대기업이나 유통업체에 납품하는 사업 구조를 갖고 있다. 이 같은 구조에서는 환율 상승은 원가 부담 증가와 수익성 악화로 이어진다. 산업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환율이 10% 오를 경우 대기업은 영업이익률이 0.29%포인트 하락하지만, 중소기업은 환율이 1%만 상승해도 영업이익률이 0.36%포인트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서 탄소섬유 등을 수입해 드론을 개발·생산하는 중소기업 B사 역시 고환율로 경영 부담이 커지고 있다. B사 대표는 "환율이 오르면서 원부자재 단가가 계속 상승하고 있다"며 "지금은 버틸 수 있지만, 환율이 1500원을 넘어서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기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연구개발(R&D)에 집중해야 하는 시점인데, 환율 부담이 커지면 R&D 비용부터 줄여야 하는 상황에 내몰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의 조사에서도 중소기업이 고환율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기중앙회가 지난해 12월 1일부터 19일까지 수출입 중소기업 635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환변동 중소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40.7%가 환율 급등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답했다. 이들은 환율 상승에 따른 원부자재 가격 상승을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다. 이밖에 외화 결제 비용 증가, 물류비 상승 등이 뒤를 이었다.
더 큰 문제는 늘어난 원가를 판매 가격에 반영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조사 대상 중소기업의 55%는 환율 상승으로 증가한 원가를 판매 가격에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납품가 인상이 불가피하지만, 중소기업 대부분이 대기업이나 원청업체에 종속된 거래 구조에 놓여 있어 가격 협상력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중소기업계는 이러한 상황을 '샌드위치 구조'로 설명한다. 원자재를 수입·공급하는 대기업은 환율과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반영해 중소기업에 공급가를 인상한다. 반면 중소기업은 완제품을 납품하는 대기업이나 유통업체에 가격 인상을 요구하기 어려운 위치에 놓여 있다. 이로 인해 중소기업은 원가 상승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은 채 수익성이 악화되는 구조에 빠지게 된다.
◇"납품대금 연동제 실효성 높여야"
전문가들은 우선적 대안으로 '납품대금 연동제 활성화'를 강조한다. 납품대금 연동제는 원자재 가격 변동에 따라 납품 대금을 조정하는 제도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도입됐지만 현장에서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희중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고환율 환경에서 중소기업의 원가 부담을 완화하려면 납품대금 연동제를 형식이 아닌 실질적으로 작동시키는 것이 시급하다"며 "원자재 수입 대기업과 제품 납품 대기업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껴 있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문을 닫는 중소기업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최병철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영대 교수는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달리 환율 변동을 흡수할 시간과 여력이 없다"며 "환율 변동 위험을 분산할 수 있는 금융 지원, 환변동 보험 확대, 납품 구조 개선이 동시에 이뤄지지 않으면 고환율 부담은 고스란히 중소기업에 전가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이어 "1400원대 환율이 뉴노멀이 예싱되는 상황에서 단기 처방이 아니라, 중소기업이 환율 충격을 견딜 수 있는 제도적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