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 진열대 앞에서 음료수와 과자를 스스로 집어 올려 정리하는 로봇. 아직은 낯선 장면이지만, 국내 한 스타트업이 이를 실제 산업 현장에 적용하는 단계까지 끌어올렸다. 김희원 숭실대 인공지능(AI) 융합보안학과 교수 연구팀에서 출발한 스핀오프 기업인 카이로바다.
카이로바는 로봇의 '두뇌'에 해당하는 소프트웨어(SW)와 '신체'에 해당하는 하드웨어(HW)를 함께 설계하는 AI 로봇 기업이다. 로봇 제어 소프트웨어만 개발하거나 하드웨어만 제작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실제 산업 현장에서 바로 작동할 수 있는 통합형 로봇 설루션을 제공한다.
카이로바가 주목하는 문제는 로봇 산업의 오래된 한계다. 물건 위치가 조금만 바뀌거나, 사람과 장애물이 함께 움직이는 환경에서는 기존 로봇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마트, 물류센터, 생산 현장처럼 정해진 규칙이 없는 공간에서는 자동화가 더디게 진행돼 왔다.
이 회사는 가상 공간에서 로봇을 먼저 학습시킨 뒤, 그 결과를 실제 로봇에 적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엔비디아의 로봇 시뮬레이션 플랫폼 '아이작 심(Isaac Sim)'을 활용해 수천, 수만 번의 시행착오를 가상 환경에서 끝낸 뒤, 현실 세계에서는 바로 작업을 수행하도록 만드는 구조다. 물리적인 실험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카이로바는 이미 기술 검증 단계(PoC)를 마쳤다. 가상 환경에서 편의점과 마트 진열대를 구현하고, 음료수와 과자를 인식해 집어 올리고 진열하는 작업을 안정적으로 수행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위해 실증용 모바일 양팔 로봇도 자체 제작했다. 이동 플랫폼과 두 개의 로봇 팔을 결합한 형태로, 실제 매장과 유사한 환경에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함께 작동하는지를 검증했다.
김희원 대표는 "로봇 제어부터 센서 입력, AI 판단까지 전체 구조를 직접 설계한 게 강점"이라며 "작업 절차, 물류 동선, 로봇 동작 범위를 정밀 분석해 하드웨어 설계에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카이로바의 목표는 편의점 진열 로봇에 그치지 않는다. 현재는 마트와 대형 물류센터 환경까지 고려한 시뮬레이션을 고도화하고 있다. 이동 동선이 복잡하고, 장애물이 수시로 변하는 물류 현장에서도 로봇이 스스로 판단해 작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기술을 다듬는 단계다.
향후에는 제조 공정, 서비스 로봇 분야까지 적용 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특정 로봇 제조사에 종속되지 않는 구조로, 기존 로봇에 소프트웨어만 적용하거나, 필요할 경우 맞춤형 로봇 하드웨어까지 함께 제공하는 방식이다.
카이로바의 기술적 기반은 학계에서 이미 검증됐다. 김희원 대표는 컴퓨터비전패턴인식학회(CCVPR), 미국 인공지능학회(AAAI) 등 세계 AI 학회에 다수의 논문을 발표해 왔다. 로봇 조작 능력을 겨루는 국제 대회(Arnold Challenge)에서는 올해 세계 1위, 지난해 3위를 차지하며 실제 제어 기술에서도 경쟁력을 입증했다.
현재 회사에는 석·박사급 연구 인력 16명이 참여하고 있으며, 엔비디아·퀄컴·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등에서 실무 경험을 쌓은 인재들이 개발을 이끌고 있다.
카이로바는 기술 개발과 함께 사회적 역할도 강조한다. 마트와 물류센터, 생산 현장은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반복적이고 고된 작업을 로봇이 대신할 수 있다면, 인력난 완화와 작업 환경 개선이라는 두 가지 효과를 동시에 기대할 수 있다.
김 대표는 "로봇이 사람을 대체하기보다는, 사람이 하기 힘든 일을 맡는 도구가 되길 바란다"며 "현장에서 실제로 쓰일 수 있는 기술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카이로바는 서울시 캠퍼스타운 사업의 일환으로 숭실대 캠퍼스타운에 입주했다. 숭실대 캠퍼스타운 추진단은 유망 스타트업을 입주기업으로 선정해, 창업 공간, 실무 교육, 사업 고도화 지원, 분야별 전문가 자문 등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