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성 초기투자액셀러레이터(AC)협회장./염현아 기자

"오랜 숙원이었던 투자 대상의 업력이 늘어나 생태계에 숨통이 트이게 돼 다행입니다. 이제 다음 미션은 '투자 유치 이력이 없는' 5년차 스타트업만 허용하는 제한을 없애는 겁니다."

전화성 초기투자액셀러레이터(AC)협회장은 지난 3일 조선비즈와 만나 "우선 투자 대상을 확대했으니, 후속 투자 관련 규제는 내년에 단계적으로 풀어가는 게 목표"라며 이같이 말했다.

벤처·스타트업 업계의 숙원이었던 투자 대상 기업의 업력을 확대하는 내용의 '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AC가 운용하는 개인투자조합이 투자할 수 있는 스타트업의 업력이 '3년 이하'에서 '5년 이하'로 넓어졌다.

그동안 이른바 '3년 룰'은 AC업계와 스타트업 모두에게 짐이었다. AC는 기술 검증이 덜 된 초기 기업에 쫓기듯 투자해야 했고, 스타트업은 투자 기회를 놓쳐 자금 공백에 빠졌다. 특히 연구개발(R&D) 기간이 긴 딥테크·바이오 분야는 피해가 더 컸다.

전 회장은 "전체 조합 기준으로 절반 가까운 비율을 3년 안에 채워야 했기 때문에 투자 타이밍이 왜곡됐다"며 "기술을 다 만들어놓고도 4~5년 차에 투자 공백이 생기면서 실제 폐업률도 이 구간에서 가장 높다"고 말했다. 그는 "딥테크는 3년 안에 성과가 안 나는 것이 당연한데 제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제도 개선까지는 많은 난관이 있었다. 투자 논의가 금융 규제 영역으로 분류되는 데다, 4~5년차 기업에 대한 투자 주체를 두고 금융권·중소벤처기업부·국회 간 이해관계가 달랐다. 벤처캐피탈(VC) 역시 이 구간 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구조가 아니어서 AC와 VC 사이에 공백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전 회장은 "모두 필요성을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나서 실행할 주체가 없었다"며 "특히 협회가 두 갈래로 나뉘어 있을 때는 이 논의가 아예 테이블에 오르기조차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협회 통합이 큰 역할을 했다. 기존 한국AC협회와 초기투자기관협회는 지난해 5월 통합돼 '초기투자AC협회'로 출범했다. 업계는 당시 AC협회장이었던 전 회장이 통합을 주도하며 제도 개선 동력을 만든 것으로 평가한다.

협회 통합 직후에는 첫 가시적 성과도 나왔다. AC가 자회사를 설립해 직접 스타트업을 만드는 '벤처스튜디오(컴퍼니빌딩)' 제도가 공식화된 것이다. 이를 통해 AC가 스스로 창업팀을 꾸리고 초기 투자·보육을 맡아, 적합한 창업자를 세운 뒤 빠르게 엑시트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하지만 숙제는 남아 있다. 이번 개정안에는 '투자유치 이력이 없는 5년차 스타트업'만 투자 대상에 포함한다는 단서 조항이 붙었다. 업계는 이를 가장 큰 걸림돌로 본다. 초기 투자 이후 후속 투자가 필요한 4~5년차 기업이 있어도, 두 번째 투자라는 이유로 AC는 투자를 할 수 없어 성장 단계에서 자금 공백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투자 유치 이력이 없는 5년차 스타트업'이 얼마나 존재하는지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있다.

전 회장은 "처음부터 이 단서를 모두 없애려 했다면 개정안 자체가 통과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이제 협회가 하나로 뭉친 만큼, 다음 과제는 4~5년차 기업의 '첫 투자' 제한을 없애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 회장은 AC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로 '세컨더리 시장 정비'를 꼽았다. 세컨더리 펀드는 VC·엔젤투자자가 기존 펀드에 보유한 지분을 매입해 회수하는 구조지만, 현재 국내 세컨더리 시장은 VC 중심으로 편중돼 있어 AC의 회수 통로는 여전히 막혀 있다.

그는 "코스닥 시장의 수요·공급이 무너지며 회수가 사실상 막힌 상황"이라며 "코스닥 펀드 조성과 자본 유입이 이뤄져야 VC 회수가 살아나고, 그래야 AC도 세컨더리 펀드를 통해 회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모태펀드 규모가 확대된 만큼, AC 지분 매입을 '주목적'으로 하는 세컨더리 펀드 도입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전 회장은 "이번 개정안은 시작일 뿐"이라며 "해외는 네거티브 규제로 기간 제한이 없는 반면 한국은 모든 것을 명문화하는 포지티브 규제로 움직여 제도 하나 바꾸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이렇게 하나씩 풀리기 시작하면 기술 기반 창업이 제대로 자랄 토대가 마련될 것"이라고 했다.

전 회장은 또한 초기투자AC협회 초대 회장으로 취임하자마자 AC의 자회사 설립을 가능하게 해 직접 스타트업을 만드는 벤처스튜디오(컴퍼니빌딩)를 제도화했다. AC가 자체적으로 창업팀을 구성해 초기 투자와 보육을 맡고, 적절한 창업자를 세워 빠르게 엑시트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