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제조 시설 문을 열자 고소한 냄새가 코끝을 감쌌다. 위생을 위해 착용한 마스크 너머로 구운 견과류 향이 스며들었다. 갓 볶은 아몬드와 캐슈 향이 섞여 커피 로스터리 한가운데 서 있는 듯했다. 윙윙거리는 기계음 사이로 숱한 견과류들이 제 갈 길을 찾는 소리가 미세하게 들렸다. 모든 공정이 끝나면 이들은 작은 봉지 안에서 자리를 잡는다.
지난 6일 방문한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더채움'은 견과류를 가공해 판매하는 회사다. 한 봉지에 25g을 담은 양으로 하루에 필요한 적정 섭취량을 맞춘 제품이 대표 상품이다. 작은 봉지 안에는 아몬드, 캐슈, 피칸 등이 일정 비율로 섞여 있다.
지금은 견과류를 커피처럼 로스팅하는 방식이 생경하지 않지만, 과거에는 아몬드를 기름에 튀겨 소금을 덮는 방식을 일반적으로 사용했다. 1984년 한 견과류 회사에서 근무하던 권영기 더채움 대표는 '왜 좋은 견과를 기름에 튀기고 소금으로 덮는가?'라는 의문을 품었다고 했다.
그는 "45~99%가 지방으로 구성된 견과류를 기름에 튀기면 몸에 아무 이득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제조 공정을 바꾸면 좋겠다고 생각해 공부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권 대표는 프랑스와 일본 등 식품 박람회를 찾아다녔다. 외환 위기로 회사를 다닐 수 없게 되자 1998년 직접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기존 '튀김'을 대체할 새로운 방법으로 저온 로스팅(볶기)에 주목했다. 수백 차례 실험 끝에 150도 이하 온도에서 90~100분간 진행되는 저온 로스팅이 씹을수록 단맛을 살리는 조건이라고 결론 내리고 이를 특허로 냈다. 더채움은 관련 특허 5개를 보유하고 있다.
권 대표는 "로스팅 방식으로 견과류를 제조하고, 25g 소포장을 시도하니 직원과 가족 등의 반대가 심했다"고 말했다.
이어 "한 논문에서 약 22~30g이 적정 섭취량이라는 연구 결과를 보고 이를 적용했는데, 당시에는 1㎏을 사고팔던 시절이라 누가 25g을 먹느냐고 했다"며 "홈쇼핑에 가져갔더니 '이걸 어떻게 팔 거냐'고 물리쳐서 인터넷 쇼핑몰을 만들어 판매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주위 우려와 달리 시장에서는 좋은 반응을 얻었다. 간편하게 들고 다니며 먹을 수 있다는 점이 주효했다. 후발 업체들도 잇따라 비슷한 콘셉트를 내놓으면서 '하루 한 줌'이라는 단어가 하나의 산업 카테고리로 자리 잡았다. 처음에는 직원들이 직접 견과류를 계량해 봉지에 담았지만 지금은 자동화 설비가 25g을 맞춰 포장한다고 했다.
권 대표는 "전 공정 항온·항습 자동 제어 시스템을 도입해 공장 온도와 습도를 자동으로 조절하고, 쩐내 없는 품질을 유지하고 있다"며 "원자재 관리에도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더채움은 직원 30여 명과 자동화 공장으로 견과류 시장 1조5000억원 규모에서 경쟁하고 있다. 한 달에 100만 봉지를 생산한다. 지난해 유통을 담당하는 자회사를 포함해 매출 120억원을 기록했다. 쿠팡·CU·코스트코 등에서도 주문한 회사의 브랜드로 제품을 대신 생산해 주는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 방식으로 협력하고 있다.
권 대표는 "쿠팡과 코스트코가 각각 대만, 동남아시아 국가에 제품을 납품하겠다고 해서 관련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내년에는 유통을 제외한 가공 매출로만 150억원을 기록하고 싶다. 공장 생산 능력 안에서 이룰 수 있는 수준"이라며 "제품군을 많이 늘리는 대신 견과류에 집중하는 회사로 성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