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배터리 안에는 전기를 꺼내는 양극과 이를 받아들이는 음극이 있다. 리튬은 둘 사이를 오가며 전기를 저장하고 꺼내는 역할을 한다. 음극은 리튬을 담아두는 그릇이자 전기를 저장하는 공간으로, 얼마나 많은 리튬을 안정적으로 저장할 수 있느냐가 배터리 용량을 좌우한다.

현재 대부분 흑연을 음극 소재로 쓰지만, 저장 공간에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많은 기업이 흑연보다 10배 이상 높은 에너지 밀도를 가진 '실리콘 음극재'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병철 카이로스 대표

2차전지 소재 스타트업 카이로스 역시 전기차 배터리 주행 거리와 충전 속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실리콘 음극재 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카이로스를 창업한 이병철 대표는 LG전자 소재 개발 분야에서 20년간 근무했다.

그는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는 가운데 배터리 충전 효율 개선이 남은 과제"라고 말했다. 이어 "2022년 창업했고 현재 연구·개발(R&D)에 세라믹 공학 관련 박사들이 포진된 상태"라며 "실리콘 제어와 복합 코팅 기술 등을 보유하고 있고, 최근 공장을 설립해 내년에 제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흑연과 실리콘을 '방'으로 표현했다. 흑연이 이미 꽉 찬 '방'이라면 실리콘은 그 방을 열 개 이상 늘릴 수 있는 소재라고 했다. 실리콘은 리튬이온을 훨씬 더 빠르고 많이 저장할 수 있다. 다만 실리콘은 충·방전 과정에서 부피 팽창과 균열이 발생해 수명이 짧아지는 단점이 있다. 카이로스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도성 복합 물질 코팅 기술을 개발했다.

이 대표는 "실리콘 팽창을 제어해 균열을 최소화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코팅 기술이 실리콘 상용화의 열쇠"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2차전지 소재는 안전성과 신뢰성 평가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며 "한 번 평가할 때 3~4개월씩 걸려 사업 속도가 느린 점이 가장 큰 어려움이지만, 그만큼 기술의 진입장벽이 높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실리콘 음극재 관련 시장은 2030년 전 세계 8조원 규모로 커질 전망이다. 카이로스는 현재 국내 주요 대기업을 대상으로 실리콘 음극재의 신뢰성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일정 조건의 신뢰성 평가를 통과하면 더 가혹한 조건으로 재차 평가를 진행한다. 카이로스는 차별화된 코팅 기술을 기반으로 시장 진입을 노리고 있다.

이 대표는 "결국 누가 안정적으로 상용화하고 실리콘 함량을 극대화할지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 실리콘 음극재는 함량이 10% 내외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100% 함량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가격 경쟁력이 있는 제품을 시장에 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력을 인정받은 카이로스는 지금까지 75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일본의 한 로봇·드론 제조 기업도 고함량 실리콘 음극재가 필요해 카이로스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삼성과 LG, SK 등이 높은 2차전지 점유율을 가지고 있어 국내 대기업과 협력하면 곧 해외 진출을 이루는 셈이지만, 해외에서도 카이로스를 주목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음극재는 시장을 열고 있는 상황"이라며 "카이로스가 고함량 실리콘 음극재를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내놓고, 이 분야를 선도할 수 있는 회사로 자리 잡도록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