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마루 제조 중소기업들이 인도네시아산 합판 수입과 관련해 관세청의 잘못된 분류로 수년간 약 100억원에 달하는 세금을 잘못 납부한 사실이 드러났다.
관세청이 인도네시아산 합판의 수종(樹種)을 잘못 분류해 협정관세 대신 일반관세를 물렸고, 법원이 최근 이를 "위법한 처분"이라 판결한 것이다.
20일 조선비즈 취재를 종합하면, A사 등 국내 중소 마루업체 10여 곳은 인도네시아에서 수입한 합판에 한·아세안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협정관세 5%를 적용받아왔다.
그러나 2021년 관세청은 이들 제품이 '특정 열대산 목재 88종'에 해당한다며 10%의 일반관세를 물리고, 이미 납부한 세율 5%와의 차액을 추가로 내라고 통보했다. 추가 납부액은 총 100억원에 달한다.
쟁점은 수입 합판의 수종(樹種)이다. A사 등이 들여온 '메란티 다운 르바르(Shorea sp.)'는 '쇼레아 속'에 속한 여러 아종 가운데 하나로, FTA상 협정관세 적용이 가능한 목재다.
그러나 관세청은 이를 '쇼레아 울리기노사(Shorea uliginosa Foxw.)', 즉 조정관세 대상인 '메란티 바카우(Meranti Bakau)'와 동일 수종으로 판단했다.
A사 측은 "관세청이 식물 분류학을 오해한 단순 착오를 무리하게 과세로 이어갔다"고 반발했다.
문제는 관세청이 인도네시아 정부 기관의 답변을 왜곡해 '동일 수종'이라는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점이다.
조선비즈가 입수한 관세청의 '한·아세안 FTA, 인도네시아산(産) 합판 원산지 정보수집 국외 출장 결과 보고서'를 보면, 관세청은 2018년 인도네시아 환경산림부 산하 임산물연구개발센터를 방문해 질의를 진행했으나 인니 측은 "두 목재는 지역명만 유사할 뿐, 실험분석 없이는 동일 수종이라 단정할 수 없다"고 명확히 답했다.
그럼에도 관세청은 출장 보고서에 "메란티 다운 르바르의 학명은 쇼레아 울리기노사이며, 표준명 메란티 바카우와 동일 수종임을 확인했다"고 기재했다.
이후 2019년 인도네시아 통상부가 "메란티 다운 르바르는 특정 열대산 목재 88종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회신했지만, 관세청은 이 사실을 무시한 채 추가 과세를 강행했다.
이로 인해 업체들은 수십억원의 예기치 못한 세금 부담을 떠안았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관세청의 한 줄짜리 공문 때문에 회사 자금 흐름이 멈췄다"며 "잘못된 행정 판단이 중소기업을 벼랑 끝으로 몰았다"고 호소했다.
A사 등은 행정심판에 이어 지난해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5월 서울행정법원은 "관세청의 조정관세 부과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관세청은 A사 등이 낸 추가 관세를 돌려줘야 한다. 다만 법원은 "허위 보고서 작성 등으로 볼 만한 중대·명백한 하자는 없다"며 형사적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소기업계는 "공문서 내용이 사실과 다른데도 '허위가 아니다'는 해석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A사 관계자는 "관세청이 추가 과세가 부당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억지로 과세를 밀어붙였다"며 "잘못 매긴 세금은 돌려주면 그만이라는 식의 무책임한 태도"라고 비판했다.
관세청은 "허위 보고서를 작성할 이유가 없으며, 모든 과세는 법령에 따른 정당한 절차였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법원 판결로 과세의 근거가 흔들린 만큼, 감사원 감사나 국회 차원의 조사 필요성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FTA 원산지 판정은 국가 신뢰와 직결되는 사안인데, 관세청이 이를 임의 해석해 기업에 부담을 전가했다"며 "유사 사례가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