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대회 참가는 재미에서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그 재미가 어느 순간 사람들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확신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달 초 열린 '2025 서울 AI로봇쇼'에는 세계적 무대에서 성과를 거둔 국내 대학 연구팀들이 대거 참가했다. 그중에서도 부산대학교 '타이디보이(Tidyboy)' 팀은 최근 '로보컵 2025′에서 홈서비스 로봇 부문 세계 1위를 차지하며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
조선비즈는 지난달 26일 집안을 정리하는 능력을 앞세워 '이동 조작(mobile manipulation)' 분야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내온 이 팀을 이끌고 있는 이승준 부산대 교수(사진)를 인터뷰했다.
이 교수는 부임 전부터 로봇 축구, 재난구호 로봇대회 등 국제 대회에 꾸준히 참가하며 경험을 쌓아왔다. 부산대에 자리를 잡은 뒤 일본 도요타에서 연구용 홈 서비스 로봇을 임대받으면서 본격적으로 학생들과 팀을 꾸렸고, 2018년부터 국제 대회 무대에 나섰다.
"처음엔 빌린 로봇으로 출전했지만, 2023년부터는 저희가 직접 설계하고 제작한 로봇을 들고 나가고 있어요. 그게 지금의 타이디보이가 된 겁니다."
'타이디보이'라는 이름에는 철학이 담겨 있다. 집안 정리를 뜻하는 'tidy up'에서 따온 이름처럼, 이 팀은 로봇팔을 이용해 물건을 옮기고 환경을 정리하는 능력에 집중한다.
이 교수는 "팔 없는 로봇은 결국 제한된 일을 할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로봇팔이 달리면 직접 물체를 조작하고, 훨씬 복잡한 임무를 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타이디보이 팀이 내세운 로봇은 '아누비스(Anubis)'. 이 로봇은 국제 무대에서 압도적 성능을 보여주며 세계 정상에 올랐다. 핵심은 좁은 공간에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구조 설계다. 양팔을 접어 몸집을 줄이면 다른 팀 로봇보다 2~3배 빠른 속도로 장애물을 피해 움직일 수 있다.
또 자체 개발한 양팔 동작 계획기를 활용해, 인식한 물체를 신속하게 집어 올릴 수 있다. 아울러 아누비스는 내장형 양자화 LLM(거대언어모델)을 탑재해 외부 서버 연결 없이도 복잡한 자연어 명령을 이해하고 실행할 수 있다.
"다른 팀들이 서버 연결 지연 때문에 애먹을 때, 저희는 현장에서 바로 명령을 해석해 움직일 수 있었죠. 그게 큰 차이를 만들었습니다."
세계 1위라는 화려한 성과 뒤에는 수많은 실패와 시행착오가 있었다. 그는 "로봇팔 드라이버 개발 과정에서 오류 때문에 팔을 여러 번 파손하기도 했다"며 "대회 도중 알 수 없는 오작동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른 적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결국 원인을 집요하게 파고든 끝에 제어 PC 전원부 문제라는 답을 찾아냈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문제를 해결했다. 이 교수는 "팀원들이 각자 맡은 분야에서 100% 이상 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자신들이 만든 로봇이 국제 무대에서 통하는 걸 경험하며 큰 자신감을 얻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타이디보이 팀은 칭화대, 도쿄대 등 세계 유수 대학팀들과 경쟁해 왔다. 이 교수는 "매번 느끼는 건, 우리가 아직 배울 게 많다는 것"이라며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잘하는 분야도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고 강조했다.
국제 무대에서의 교류는 단순한 경쟁을 넘어 협력의 장이 된다. 서로 최신 기술을 배우고, 선의의 경쟁을 통해 함께 발전한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앞으로 타이디보이가 도전하고 싶은 분야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대규모 파운데이션 모델을 로봇에 접목해, 더 정밀한 물체 조작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일상에서 폭넓은 일을 할 수 있는 가정, 의료, 산업용 로봇을 개발하고 싶다"며 "인간-로봇 상호작용 부분의 성과를 바탕으로 인간과 감정을 교류하고 의사소통이 가능한 도우미 로봇도 개발 중"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