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 부진에 휘청이고 있는 페인트 회사들이 해외 법인을 청산하고 있다. 국내 공사 현장이 멈추고 중소·중견 건설사가 잇따라 폐업에 내몰리며 실적이 악화하자 수익을 내지 못한 해외 법인을 정리하는 것이다.
페인트 회사들은 건설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새로운 수익 모델 정착은 더딘 상황이다.
19일 조선비즈 취재를 종합하면 울산 소재 A종합건설은 최근 법원으로부터 파산 폐지 결정을 받았다. 당초 법원은 A종합건설에 대한 파산 선고를 내렸으나 자산이 적어 파산 절차 진행에 필요한 비용도 감당 못 해 중도 폐지를 결정했다. 파산 절차가 폐지됨에 따라 채권 변제도 중단됐다.
A종합건설만의 문제가 아니다. 신동아건설과 삼부토건 등 중견 건설사를 비롯해 각 지역에서 사업을 영위한 중소 건설사들이 무너지고 있다. 지난달 기준 종합건설 업체 폐업 신고 건수는 376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37건)보다 39건(11.6%) 늘었다. 매일 3개 회사가 문을 닫는 격이다.
중소·중견 건설사의 위기는 페인트 업계로 고스란히 전이되고 있다. 국내 페인트 산업은 매출의 50~70%를 건축 공사에 의존하고 있다.
KCC(002380)는 2분기 매출 1조7053억원, 영업이익 1404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4.1%, 0.1% 감소했다.
삼화페인트공업은 올해 2분기 영업이익(연결기준)은 8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4.5% 줄었다.
노루페인트(090350) 역시 2분기 연결 기준 매출액이 2244억원, 영업이익은 14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3%, 24.6% 감소했다.
매년 실적 악화가 이어지자 페인트 회사들은 해외 진출 교두보로 삼았던 현지 법인까지 정리하고 있다. 노루페인트는 올해 2월 이탈리아 밀라노 전시 참여를 위해 세웠던 노루 밀라노 디자인 스튜디오를 청산했다.
2018년 한원석 노루페인트 부사장 주도로 설립된 해당 법인은 지난해 '2024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홍철 원더랜드' 전시에도 참여했다. 하지만 해당 법인 설립 후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한 데다, 국내 실적까지 부진하면서 결국 현지 철수를 결정했다.
삼화페인트공업도 올해 상반기 자본금을 회수한 뒤 청산 절차를 끝냈다. 2019년 해외 자동차용 도료 시장에 본격 진출하겠다는 목표로 남인도에 법인을 세웠다.
법인을 세운 첸나이는 인도 남부 타밀나두주에 위치한 도시로, 오랫동안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항만 거점 역할을 해왔다. 이곳에서 자동차 내외장재용 도료를 판매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매해 적자를 내고 사업도 자리를 잡지 못하자 법인을 정리했다.
페인트 회사들은 실적 개선을 위해 사업 다각화 전략에 힘을 싣고 있다. 삼화페인트공업은 이달 새로운 자동차 보수용 페인트를 출시했다. 지난해에는 이차전지 등 제조 공정에 쓰이는 등 첨단 소재 개발에 자원을 투입했다.
노루페인트도 지난해 이차전지 소재 13종과 수소에너지 소재 3종을 공개했다. 배터리 화재 위험을 줄여 주는 기능성 제품이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올해 1분기 연구개발에만 47억원을 투자하는 등 새 수익 모델 안착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지지부진한 해외 사업과 국내 실적 악화가 맞물려 업계 간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있다. 최근 KCC는 경쟁사인 노루홀딩스(000320) 지분을 7% 넘게 확보했다. 노루홀딩스는 노루페인트, 노루오토코팅 등 핵심 계열사를 거느린 지주사다. KCC는 "일반 투자 목적"이라며 매입 배경을 설명했지만 업계 시각은 다르다.
업계 관계자는 "상법 개정으로 상장사 주주가 3% 이상 지분을 보유하면 감사위원 선임에 참여할 수 있게 된 만큼, 단순 투자보다는 감사위원 선임을 통해 기업 운영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하려는 행보"라고 분석했다.
이어 "각 회사의 신규 사업이 아직 성과는 나타나고 있지 않지만, 기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건축 공사 의존도가 크고 신규 제품 시장이 제한적이라 지속해서 도전할 필요는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