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창업 후 엔젤 투자를 받은 한 국내 여행 스타트업은 최근 경영 전략을 수정했다. 그동안 서비스를 확장하며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했다면, 이제는 수익 구조를 만드는 데 초점을 두기로 했다. 그렇지 않으면 돈줄이 마른 현 벤처 투자 시장에서 회사 성장을 위한 투자 유치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 회사 대표 A씨는 "미래 성장보다는 우선 시장에서 살아남는 게 먼저"라며 "이익을 내야 투자 유치가 가능하고 회사가 지속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벤처 투자 혹한기 속 스타트업 성장 전략이 바뀌고 있다. 약 3년 전 벤처 투자 호황기만 해도 투자 유치 후 이익과는 별개로 매출 등 외형을 키우며 미래 성장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투자 유치가 어려워 당장 이익을 내는 '성과 기반의 성장'에 집중하고 있다.

◇"미래 성장보다 눈앞 이익"

스타트업에 있어 투자 유치는 회사 기술과 서비스를 실현하고 확장해 나갈 성장의 핵심 열쇠다. 그러나 엔젤, 시드 투자를 받은 이후 단계인 10억원 내외의 시리즈 A 투자 유치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매출 성장은 물론 이제 이익을 내는 구조를 만들지 못하면 투자를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일러스트=챗GPT 달리3

국내 스타트업의 이런 변화는 성장성을 인정받은 대형 스타트업에서 보다 뚜렷하게 나타났다. 신선식품 새벽 배송 서비스로 성장한 '컬리'는 2015년 창립 이후 10년 만인 올해 1분기에 첫 흑자를 달성했다. 유료 멤버십 강화, 화장품 등 비식품군 사업 확장, 물류센터 효율화 등에 나서며 올해 1분기 영업이익 18억원을 기록했다.

금융 앱 토스 운영사 '비바리퍼블리카', 중고 거래 플랫폼 '당근', 가구·인테리어 유통 플랫폼 오늘의집 운영사 '버킷플레이스' 등 유니콘(기업 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 기업)도 지난해 흑자로 돌아섰다.

국내 스타트업 시장에서 흑자를 기록한 기업도 10%에 이른다. 스타트업 데이터 플랫폼 혁신의숲 운영사 마크앤컴퍼니에 따르면, 실적 데이터가 집계된 국내 스타트업 6350곳 중 647곳(10.2%)이 지난해 흑자 전환에 성공한 것으로 조사됐다. 일반 기업이 아닌 스타트업 시장에서 흑자 달성 비율 10%는 높은 수치다.

◇혁신 생태계 악화 "AI, 글로벌로 살아나야"

그러나 눈앞의 이익만을 좇는 스타트업이 늘면서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에 혁신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실제로 국내 스타트업·벤처 투자 현황을 보면, 보다 안전한 후기 스타트업에 돈이 몰리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창업 3년 이하 스타트업에 투자된 벤처 자금은 2조2243억원으로 전년보다 17% 감소했다. 반면 창업 7년이 넘은 후기 스타트업 투자는 전년 대비 23.3% 증가한 6조3663억원을 기록했다.

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신생 혁신 기업을 발굴하고 키우는 스타트업 생태계가 악화되고 있다"며 "그럼에도 AI 분야 투자는 늘고, 국내를 넘어 미국 등 해외로 진출하려는 스타트업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인 부분"이라고 말했다. 국내 스타트업계가 투자 혹한기를 거쳐 AI와 글로벌 두 가지 트렌드로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것이다.

김수욱 서울대 경영대 교수 역시 이번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혁신 성장을 인정받는 것은 물론 재무적으로도 '단단한 스타트업 옥석 가리기'가 이미 시작됐다"며 "과거 호황기 당시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스타트업 투자 시장이었다면, 이제는 제대로 성장할 수 있는 스타트업을 발굴해 국가적 차원의 성장을 이끌 수 있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