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리어프리(Barrier-Free·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도 장벽 없이 쓸 수 있는) 키오스크가 뭐죠? 처음 들어봐요."

지난 3일 약 70㎡(약 21평) 규모의 서울시 중구 소재 한 돈까스 전문점. 올해 1월 28일부터 50㎡ 이상 10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은 키오스크를 설치하려면 의무적으로 배리어프리 제품을 도입해야 하지만, 이곳은 배리어프리 요건을 충족하지 않은 일반 탁상형 키오스크가 테이블마다 설치돼 있었다.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란 장애인과 고령자 등 사회적 약자의 편의를 고려해 음성 출력, 안면 인식, 수어 영상 안내, 점자 기능 등이 내장된 무인 결제기를 말한다. 장애인차별금지법 개정에 따라 설치가 의무화됐다. 위반 시 최대 3000만원의 과태료를 부담해야 한다.

이곳을 운영 중인 남모(50)씨는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었다. 남씨는 "정부 법이라면 바꿔야겠지만 일단은 상황을 지켜볼 생각"이라며 "장사도 안 되는데 자영업자들 반발이 심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프랜차이즈 음식점에 설치된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왼쪽으로부터 두 번째, 네 번째 키오스크가 배리어프리 제품이다. /현정민 기자

장애인을 위한 키오스크 설치가 의무화된 가운데, 대다수의 소상공인은 해당 사실을 인지조차 못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는 일반 키오스크에 비해 가격이 최대 3배 높아 영세 자영업자에겐 부담이 크다. 그런데도 구체적인 지원책 역시 마련되지 않아 혼란은 가중되는 모양새다.

서울 시내에서 프랜차이즈 순댓국집을 운영 중인 업주 A씨는 "정부에서 내려온 공문이 없다"며 "프랜차이즈는 본사의 지시를 받는데, 본사에서도 전혀 전달받은 바가 없다"고 했다.

배리어프리 키오스크가 설치된 경우도 있었다. 서울 서초구의 한 프랜차이즈 우동집은 매장에 일반 키오스크 2대를 두고 있으나 지난 1월 초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2대를 추가로 도입했다.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는 일반 키오스크와 외관상 차이는 거의 없으나 추가적인 기능을 제공한다. 화면 하단 '도움 기능'을 누르면 일반적인 '터치주문' 옵션과 '낮은 자세 주문' 중 주문 방식을 고를 수 있다. 낮은 자세 주문을 선택할 경우 키오스크 화면 중 아래 절반에만 선택창이 제공된다. 휠체어를 탄 상태에서도 누를 수 있다. 안내 음량의 크기도 조절할 수 있다. 화면 대비를 조절할 수 있는 기능도 있다.

그러나 해당 업장이 신속히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를 도입한 것은 본사가 직접 관리하는 직영 매장이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점장 B씨는 "본사로부터 도입 지시가 있어 기기를 들였다"며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개정안 자체에 대해선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달 25일 중소기업중앙회가 발표한 '2024년 소상공인 키오스크 활용 현황 및 정책 발굴 실태조사'에 따르면 키오스크 활용 업체 402개사 중 85.6%가 개정안 시행에 대해 '모르고 있다'고 답했다.

자영업자의 키오스크 설치를 지원하는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소진공)은 아직 지원 대상자조차 선정하지 않은 상태다.

소진공에 따르면 2025년도 소상공인 지원금 공고는 2월 말 게시된다. 본격적인 지원금 신청은 3월부터 시작된다. 이 기간 내 장애인이 불편을 느껴 사업장을 신고할 경우에는 처벌을 피하기 어렵다.

법에 위배되지 않는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를 선정하는 것도 업주에게 부담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이번 개정안에 적용되는 키오스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접근성 검증 기준을 준수해야 한다.

접근성 검증을 담당하는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에 따르면 검증 기준은 총 10개로 ▲손 또는 팔동작 보완 ▲반응시간 보완 ▲시력 보완 및 대체 ▲색상 식별능력 보완 등이 해당된다. 특히 반응 시간 보완 항목의 경우에는 최대 13가지 검증 기준을 충족시켜야 하는 만큼, 업주에게 가중되는 부담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해당 사실을 알고 있는 자영업자 사이에서도 키오스크 설치를 일단 보류하겠다는 반응이다. 네이버 자영업자 커뮤니티에는 "일단 버티면 되냐", "키패드만 교체하면 된다고 하니 일단 기다려보자"는 등의 게시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보건복지부는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의무화가 업주를 처벌하려는 취지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신고가 들어온다 하더라도 업장에 시정 조치를 거칠 것"이라며 "바로 업주를 처벌하려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정부의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의무화 조치는 당사자들의 현실적인 부담에 대한 고려 없이 목적 자체의 정당성만 따졌다는 점에서 탁상 입법으로 비판받을 소지가 있다"며 "보다 효과적으로 제도를 안착시키기 위해 정부는 체계적인 제도 지원책을 고민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