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벤처기업, 소상공인 시장에 '퍼펙트 스톰(복합적 위기)'이 오고 있다."

조주현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원장, 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 모종린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등 국내 중소·벤처, 소상공인 전문가들은 지난 7일 조선비즈가 개최한 좌담회에서 이같이 한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내수 부진, 고금리에 이어 최근 국정 혼란 등으로 국내 중소·벤처, 소상공인 업계가 정치·경제 등 다양한 방면에서 위기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위기는 곧 기회"를 외치며, 글로벌 시장을 끊임없이 두드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1400원대 원·달러 환율' 뉴노멀 시대에 적응해야 하고,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AI 슈퍼사이클(초호황기)'에 올라타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정부의 중소·벤처, 소상공인 육성 정책 역시 보다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새로운 시대에 맞는 구조로 변신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중소벤처기업부 차관을 역임한 조주현 원장은 중소기업과 벤처, 소상공인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 정책을 담당했다.

미국과 한국에서 창업 경험을 지닌 이기대 센터장은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장을 역임했다. 유효상 원장은 숭실대 중소기업대학원 교수, 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 등을 역임한 기업 경영 및 벤처 전문가다.

'골목길 경제학자'로 불리는 모종린 교수는 소상공인 및 로컬 브랜드 전문가다. 다음은 일문일답.

(왼쪽부터)조주현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원장, 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 모종린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가 지난 7일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중소벤처기업연구원에서 '2025년 중소·벤처, 소상공인 시장'을 전망했다. /조인원 기자

―지난해 말 비상계엄 사태 이후 국정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중기·벤처에 미치는 영향은.

조주현 원장(이하 조주현) "주식시장 급락이나 환율 변동성 증가와 같은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높아졌다. 이에 따라 소비와 투자심리가 위축되고 있다. 특히 창업·벤처 분야의 경우 지난 몇 년간 고금리 상황 속 투자 위축, 신사업 추진 지연 등 어려움을 겪었는데, 위기가 더욱 가중되고 있다."

이기대 센터장(이하 이기대) "벤처 투자 혹한기 속 특히 해외 투자유치에 나선 국내 스타트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의 불안정한 상황으로 인해 국내 스타트업에 투자하려 했던 해외 벤처캐피털(VC)들이 투자를 보류하는 등의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에 비상계엄 사태가 일어난 것이 굉장히 후진적이고 이에 대한 충격이 스타트업 투자 시장에도 미치고 있다."

모종린 교수(이하 모종린) "비상계엄 사태 이후 정부 주요 부처의 일정이 줄줄이 취소되는 등 국정이 한순간 '올스톱'되는 걸 겪었다. 중기부도 마찬가지였다. 정치·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위기가 복합적으로 한 번에 오고 있다. 이른바 '퍼펙트 스톰(복합 위기)'이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유효상 원장(이하 유효상) "정치 리스크가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법적인 틀 안에서 해결될 것이고, 이 정치적 리스크에 너무 치우치면 안 된다."

그래픽=손민균

―원·달러 환율 상승(원화 가치 하락)으로 수출 중소기업의 어려움도 전망된다.

조주현 "원자재를 수입, 재가공해 납품하는 대다수 중소기업이 채무부담과 영업이익 악화로 어려움이 예상된다. 환율 1% 상승 시 중소기업의 영업이익이 0.36% 감소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문제는 1400원대 원·달러 환율이 장기화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는 것이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미국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전개될 상황을 고려하면 획기적인 환율 하락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의 환율이 뉴노멀이고, 이제 이런 시대에 적응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이 환 헤지보다는 대금 결제일을 조정하거나 단가 조정 등의 방식에 의존하고 있다는 한계가 있다. 환율 변동 피해기업에 정책자금을 지원하거나, 환 헤지를 위한 변동보험을 우대 지원하는 등 정부의 역할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동시에 정부가 글로벌 시장 진출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 우리나라는 수출로 성장해 온 나라이고 해외시장을 개척하지 않으면 경제적 퇴보가 불가피하다. 동남아시아, 인도, 중남미, 아프리카 등 중소기업의 수출시장 다변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기조로 국내 스타트업 R&D 자금이 줄고 혁신 동력도 저하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조주현 "R&D 예산의 급작스러운 삭감은 이를 통해 기술혁신을 추진하려던 기업의 계획에 불가피한 차질을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보면 유사한 기술을 개발하는 스타트업들에 R&D 자금을 나눠 주는 식의 정책은 정부 R&D 투자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그래픽=손민균

이기대 "투자 효율성 측면이 중요하다. 현재 투자사들은 투자할 만한 좋은 국내 스타트업이 없다고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돈을 더 넣는다고 좋은 스타트업이 더 생기는 건 아니다.

좋은 스타트업이냐 그리고 그 스타트업 경영인들이 투자를 받은 후 목숨 걸고 회사를 키우느냐가 중요하다. 기업가정신이다. 정부가 스타트업 투자, 지원을 창업 정책이라고 말하지만, 단순 일자리 정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들여다봐야 한다."

―AI 기술 고도화로 스타트업 산업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이기대 "지난 10여년간 국내 스타트업 시장은 스마트폰을 활용한 이커머스 플랫폼 등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비즈니스 중심으로 돌아갔다. 이후 쿠팡, 배달의민족 등으로 시장이 정리됐다.

이제 전 세계적으로 AI 기술 발전으로 인한 새로운 스타트업 시대가 열리고 있다. 'AI 슈퍼사이클(초호황기)'이다. 국내 스타트업이 이런 AI 패러다임 변화의 흐름에 올라타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픽=손민균

유효상 "아직 부족하지만 AI가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의 새로운 답이 될 수 있다. 이전까지 잘 나가는 국내 중소기업 대부분은 대기업의 하청업체로 성장하는 게 보통이었다. 대기업이 이끌고 협력업체인 중소기업이 따라가는 구조다. 이는 대기업이 어려우면 중소기업도 위기에 처하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쉽지는 않지만 이런 구조를 개선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중기부가 스타트업 차원의 AI 기술 개발·비즈니스 모델 연구소를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다. 기술 개발은 물론 수익성 있는 비즈니스 모델 발굴 등 다양한 차원에서의 AI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것이다. 미국 등 해외의 경우 수익성이 높은 AI 비즈니스에 대한 투자가 급증하고 있다. 벤치마킹할 건 해야 한다."

―스타트업의 대표적인 엑시트(Exit·투자금 회수) 방법인 인수합병(M&A) 시장이 아직 걸음마 수준이라는 지적도 많다.

유효상 "M&A는 스타트업 생태계 선순환의 핵심 요인이지만, 국내 스타트업 M&A 시장은 비활성화돼 있다. 미국은 스타트업의 약 26%가 엑시트를 하고, 그중 90%가 M&A를 통한 엑시트를 한다. 하지만 한국은 연간 기술 스타트업 24만개가 설립되는데, 이 중 M&A 등 엑시트에 나서는 스타트업은 0.1%도 안 된다.

전략적 투자자(SI)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한국 스타트업 시장은 재무적 투자자(FI)가 투자를 하고 기업공개(IPO)를 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FI의 목적은 투자에 대한 이익 실현이다. 이제 삼성·SK 등 대기업과 같은 SI가 스타트업을 인수해 그 스타트업의 연속 성장을 이어 나가는 M&A 시장 활성화에 노력해야 한다."

그래픽=손민균

―2025년에도 화장품·뷰티 분야 한국 중소기업의 수출 성장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나.

모종린 "그렇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마찬가지로 K-중소 뷰티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 것으로 보인다. 창의력을 지닌 국내 중소 화장품 기업이 대형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기업과 협력해 제품을 생산하고, 소셜미디어(SNS) 등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해 마케팅에 나서며 세계 시장에서 큰 성과를 내고 있다.

제조업의 새로운 주역으로 '크리에이터 브랜드'가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화장품에서 시작해 식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소 크리에이터 브랜드가 꾸준히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조주현 "대기업이 해외에 진출, 중소기업이 협력업체로 따라가는 그동안의 대기업·중소기업 간 하청 구조를 뛰어넘은 하나의 대·중소기업 협업 생태계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여기에 K팝의 인기도 가세했다. 앞서 언급한 중소기업의 수출시장 다변화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코로나19 이후 문을 닫는 소상공인이 늘고 있다. 중기부의 소상공인 육성·지원도 중요하다.

모종린 "2017년 7월 정부가 중소기업청을 부(部)로 승격한지 약 8년이 지났다. 현재 중기부가 중소기업, 벤처, 소상공인 관련 정책을 총괄하고 있다. 중기부가 이 세 개 시장의 플레이어를 모두 육성하는 구조가 효율적인지, 다시 한번 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다. 각 영역의 전문성을 강화해 퍼펙트 스톰에 대응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자는 것이다.

특히 소상공인 지원 및 육성은 새로운 부처를 설립하는 등의 방안을 고려해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 현재 정부는 소상공인 한명 또는 사업체를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이보다는 소상공인들이 모여 지역 문화를 만들고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정책을 펼쳐야 한다. 지역별로 성수동 같은 인기 동네가 하나씩 있어야 한다. 또한 최저임금 업종별 구분 적용, 소상공인 전용 특화 은행 설립 등 소상공인의 현장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한다."